붉게 물든 황매산 철쭉

2023. 5. 4. 22:57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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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성덕왕 때 늦은 봄날, 강릉 태수로 임명된 남편을 따라가던 수로 부인이 바닷가 천 길 석벽에 핀 철쭉을 보고 갖고 싶어 했다. 종자들이 모두 난색을 지으며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마침 암소를 끌고 가던 한 노옹이 그 말을 엿듣고 석벽에 올라가 철쭉꽃을 꺾어 와 시가를 지어 읊으며 부인에게 꽃을 바쳤다. 삼국유사에 실린 〈헌화가〉* 스토리다. 수로 부인이 지금 붉게 물든 황매산 철쭉을 보았다면 산을 몽땅 사는 투기를 범하지 않을까 싶다.
 
헌화가 바칠 부인도 없이 혼자 철쭉을 보러 갔다. 며칠 전 친구가 철쭉제(4.29~5.14) 꽃 소식을 전해 왔기에 마음에 담아 두었다. 마침 합천을 다녀오는 길에 황매산군립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한창때는 황매산 산행을 더러 했고 1997년 철쭉 축제가 처음 열렸을 때 구경한 적이 있었지만, 세월이 너무나 흘렀다. 여러 해 전에 친구들과 찾아갔으나 차가 밀려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번에도 엄청나게 밀려 돌아가는 차가 많았지만, 바쁘지 않은 나는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기다려 은행나무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등성이까지는 1km 남짓. 붉은 꽃들이 자지러지게 피어서 어서 오라 유혹해 빨리 걸었다. 평일이어선지 중장년층이 많았다. 여성 수는 압도적이었다. 헌화가를 바치러 온 노옹(?)이 가끔 눈에 띄었으나 맨몸에 홀로 온 자(者)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산등성이는 천상의 화원이었다. 철쭉뿐이었지만, 짙고 옅은 것들이 서로 아름다움을 겨루며 살랑거렸다. 사람들이 잠수하듯 모두 꽃 속에 빠졌다. 표정이 행복해 보여 활짝 핀 철쭉 같았다.
철쭉 봄 치레가 끝나면 여름꽃이 기지개를 켜겠지. 마음에 스며든 분홍 물을 안고 하늘계단*을 내려선다. 저 멀리 까마귀 한 마리 햇살 물고 날아오른다. (2023.5.3.)
 
* 헌화가: 자줏빛 바위 끝에,/ 잡아 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날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이다.
* 하늘계단: 철쭉 전망대 오르내리는 탐방로 이름

 


차를 가져갈 경우 Tip 일출을 볼 겸 새벽에 도착하든지, 오후 2~3시경에 도착하면 비교적 밀리지 않겠다. 아침부터 오후 1~2시까지 밀릴 때는 입구 근처에서 정상주차장까지 3시간 걸린다고 한다(현수막 게시). 철쭉 감상은 하기 나름이겠지만, 2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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