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러기와 돼지고기

2023. 4. 26. 03:32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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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기예보는 족집게였다. 온종일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이은하 가수의 '봄비'를 여러 번 들었다. 그의 허스키한 음색이 절절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한밤에 일어났다. 두드러기가 나 몸이 근질근질해 전전반측하다가 바람을 쐬려고 밖을 나왔다. 비는 그쳤고 소슬한 바람이 불어 정신이 맑아졌다. 깊은 밤은 고요하나 큰길에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만 커졌다 작아졌다 이어진다. 그저께 저녁에 먹은 해물 순두부가 상했는지 어젯밤부터 두드러기가 돋기 시작해 조금 더 심해진 듯하다.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중반쯤 두드러기를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삼겹살 먹은 후유증이었다. 병원에서는 체질 변화이니 앞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퇴근 후 석양배(夕陽杯)에 돼지고기 안주가 등장하면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박봉으로 쇠고기는 사 먹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나만 따로 안줏감을 시킬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젓가락 질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왕 두드러기가 전신에 돋아 치료하는 데 애를 먹었다. 고민 끝에 주객으로써 백절불굴(?)의 정신을 발휘하여  돈(豚) 장군 두드러기를 버티어 내고야 말았다. 돼지고기는 아직도 최애 안주 중 하나다.
음식은 가끔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건강을 찾는 길, 나를 찾는 길, 산티아고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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