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2. 07:15ㆍ입맛
용재총화에 나오는 배재지라는 인물은 국수를 싫어해 사람들이 까닭을 물으니 입 속에 가득히 넣고 쭉쭉 빠는 것을 보면 심신이 떨리고 흔들린다고 대답했다. 면(麵)은 가락이 길다고 해서 장수를 기원하는 식품인데도 믿지 않았나 보다. 음식은 똑같더라도 개인적인 호불호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오늘은 무척 더웠다. 점심 먹으러 밀면 식당에 갔다. 오래전 부산에서 물밀면을 한 번 먹어보고 두 번째다. 그때는 국수 맛 비슷했다고 기억하는데, 오늘은 냉면 비슷한 맛에다 뒷맛이 조금 매웠다. 물비빔밀면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홀 안을 넌지시 보니 대개가 물비빔면을 먹고 있었다. 손님 회전도 상당히 빨라 종업원이 쉴 여유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물과 비빔 두 메뉴가 합쳐져 물비빔 메뉴가 새로 생겼다. 어느 것을 먹을까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밀면도 냉면처럼 시원했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온 북한 실향민이 냉면 대용으로 밀가루에 감자녹말을 섞어 밀면을 만들어 먹으면서 실향의 아픔을 달랬다. 한과 그리움이 배인 애틋한 먹거리다.
나에게도 그리운 음식이 하나 있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준 수제비다. 밀가루를 쫀득하게 반죽해 멸치 다시물에 호박을 썰어 넣어 끓인 수제비에는 사랑이란 조미료가 듬뿍 담겼다. 식사 후에도 내가 먹을 수 있도록 한 그릇을 꼭 따로 남겨두었다. 시장기를 느낄 때쯤 식어서 굳은 수제비에 양념간장을 얹어 퍼먹으면 훌륭한 간식이었다. 그때 어머니의 사랑을 남김없이 먹어 치워 이제는 배는 곯지 않으나 그 수제비 한 그릇이 아직도 그립다. (202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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