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7. 19:05ㆍ여행의 추억
오늘은 시등회 송년 산행. 생각해 보니 겨울 산에 들지 않은지가 십 년도 넘어 까마득하다. 산행은 가산산성 탐방센터에서 가산바위까지 다녀오는 왕복 11km 코스였다.
하필이면 전국에 걸쳐 한파주의보가 발령되었다. 가산산성에도 영하의 날씨였지만, 바람이 없어 견딜 만했다. 한창때는 겨울 산행이 최고라며 과만 했는데 그 넘쳤던 기상은 어디 가고 장대비 맞은 모시 두루마기처럼 풀 죽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청춘은 마음의 열정이라고 말하지만, 굳은 관절은 보폭을 맞추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들 열 명의 웃음소리는 흰 눈 사이로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며칠 전 시내에 비가 올 때 산에는 눈이 내렸다. 산성에 그날의 잔설이 남아 있어 반가웠다. 눈을 보기 어려운 대구는 살짝 눈에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걷다가도 몇 번이나 아이들처럼 즐거웠다. 행복이 뭐 별것이겠는가.
행운까지 겹쳤다. 가산바위가 가까워지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바위에 올라서자 눈보라가 거세게 요동쳤다. 순식간에 사위가 회색으로 변했다. 실로 오랜만에 맞닥뜨리는 겨울다운 현상에 환호성을 질렀다. 눈 보기조차 힘든데 산행 중에 눈보라를 맞다니 대 행운이었다.
하산하니 기슭은 눈이 흩날리다 말았나 보다. 말끔한 주차장을 보니 우리가 마치 선계를 다녀온 듯 마음이 뿌듯했다. 몸은 늙었으나 마음은 눈발처럼 살랑댔다. 모처럼 산행에 첫눈까지 맞았으니 운이 따랐다. 아쉬워 내려온 산을 다시 돌아보았다. 산봉우리엔 흰 눈이 내려앉았고 세월을 먹은 사내들 머리엔 백발이 성성하게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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