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강화도 여행

2022. 11. 7. 15:58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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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첫 여행은 1988년이었다. 그때는 당일치기로 마니산 산행과 전등사만 보고 왔다. 이번에는 친구와 부부 동반해 여섯 명이 1박 2일로 다녀왔다. 34년 전보다 도로, 교통, 숙박 사정 등 모든 여건이 좋아져 먼 거리였지만,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내 목적은 가톨릭 성지 순례였고, 다섯 명은 불교도여서 사찰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은 중학교 졸업 후 헤어진 동창생을 53년 만에 상봉해 실로 기쁨이 컸다. 친구는 강화도에서 해병대 장교로 복무하다 전역하였다. 현재는 이곳에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친구 부부가 대견했다.

이틀째, 오후 한 시 이전에 강화도를 빠져나가야 차가 밀리지 않는다는 조언을 듣고, 일찍부터 서둘렀다. 숙소에서 석모도로 가는 동안 갯벌 위로 떠오른 일출을 감상할 수 있었다. 기러기 떼가 해를 배경으로 V자 대형으로 끼룩끼룩 울면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대구에서는 아직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평화전망대’를 찾아갔으나 진입로 입구에서 해병 초병들이 "군사 상황[북한 미사일 발사, 한미연합훈련 추정]으로 일시 폐쇄되어 들어갈 수 없다."라고 저지했다. 아쉬웠지만, 가지고 있던 약간의 간식을 초병에게 건네주고 U턴했다. 여정의 남는 시간을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보냈다. 덕분에 여행의 맛을 만끽했다. 짧은 일정이었으나 마음은 몇 날을 같이한 기분이었다. 다녀온 사진을 티스토리에 담아두려니 함께한 시간이 다시금 주욱 펼쳐진다. 가슴에 품어지는 여행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900km를 혼자 안전 운전한 인산에게 감사한다. (with: 인산, 의호)

 

 

갑곶돈대 강화전쟁박물관 내 비석군 / 조선시대 선정비와 금표, 삼충사적비 등 총 67기의 비석을 모여 있다. 자연보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표석인 금표는 1733년(영조 9)에 세웠던 것으로 "재나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를 친다."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요즘 보다 더 강력한 형벌 같다.
광성보 / 신미양요 때(1871. 4월)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표방하면서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당시 어재연 장군 이하 전 병사가 용감하게 싸워 장렬히 순국했다. 광성보 내에는 경치가 수려하여 바다를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 하기 좋다.
전등사 전경 / 여느 절을 가던 주련의 글귀가 궁금했는데 주련 아래에 해석문을 붙여 의문을 해소해 주어 아주 좋았다. 곳곳에 현대 조각 작품을 어울리게 배치하여 젊은이의 취향을 저격했다. 옛 절을 현대화한 것처럼 보여 참신해 보였다.
전등사 대웅전 추녀에 벌거벗은 여성이 처마를 들어 올리는 나녀상(裸女像). 대웅전 중건 당시에 목수가 전등사 아랫마을 아가씨와 결혼을 약속했다가 속아 복수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내려오는 이야기.
라르고리조트 / 카페에서 친구와 만났다.
흘러간 추억을 돌이키느라 맛있는 횟감이 남았다.
남취당 / 예스러움을 고려해 불편을 감수하고 한옥을 숙소로 잡았다. 주인 부부의 살뜰한 정성이 곳곳에 베여 있었다.
보문사 와불 / 석모도 낙가산에 있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3대 해상 관음도량이라고 한다. 정성으로 기도드리면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없다하여 신도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평화전망대를 향하는 추수가 끝난 황금 들녘. 섬이 섬 같아 보이지 않는 너른 들판이다.
헤이리 마을 /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대단한 곳이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주차가 어렵고 식당에서는 오래 기다렸다. 가까운 프로방스마을 주변 식당가에 다양한 식당이 있다는 것은 돌아오면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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