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22)
-
우리 손자 신났다
아들 내외와 손자가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내온 카톡. 아이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신나게 노래한다. 겨우 스물두 달인데 '산토끼' 노랠한다니. 발음이 부정확하여 오히려 귀엽다. 따라 흉내내고 싶다. 아이 근황을 말로 전해 듣는 것보다 동영상으로 보니 리얼해 깜찍하다. 카톡 영상을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본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옛말이 생각나 겸연쩍기도 하지만, 이거슨~ 자랑 아니고 싸랑이엇다. 집으로 가는 길, 위험하지 않게
2022.09.02 -
옥상에서 보는 구름
하루에 두어 번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쳐다본다. 주로 남쪽과 서쪽 하늘을 보게 된다. 건물 뒤 북쪽은 ‘뱀산’이 가로막은 숲이고, 높은 건물이 시야를 가리는 동쪽 하늘은 보는 맛이 떨어진다. 쾌청한 하늘은 볼 것이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가없는 공간은 오히려 눈이 부시다. 먹물 구름이 잔뜩 낀, 오늘같이 흐리고 비 온 날은 볼거리가 낫다. 상상력도 자극된다. 천군만마를 다루는 신화 속의 천군(天軍)이 떠오르고, 구름 피어오르는 산속에는 어린 동자가 신선의 차를 끓이는가도 궁금해진다. 퇴근 무렵 바라보는 서쪽 하늘도 좋다. 간혹 붉게 불타는 황홀한 저녁놀을 보면 형언할 수 없는 감상에 젖기도 한다. 늘그막 인생에서 흘러가는 구름과 저녁놀이 마치 내 삶의 반추 같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2022.09.02 -
친구의 마음을 읽다
1. 생일이라면 서로 축하를 하고 선물을 보내고 하는 습관이 있어 탐관오리들은 흔히 생일재(生日財)로 여기는 일이 많았다. 중국 신천현(神泉縣)에 장 아무개가 현령으로 취임하여 말로는 몹시 청백한 소리를 했다. 얼마 안 가서 사속들을 불러 말하기를 “아무 날이 나의 생일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무슨 선물 같은 것을 가져오지 말게. 가져와도 받지 않을 테니.” 사속들이 생각하니 이것은 넌지시 가져오라는 암시인지라, 생일을 당하자 값비싼 선물로 생일을 축하했다. 현령은 거짓 놀라는 듯이 “이게 웬일인고? 제발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미리 부탁하지 않았던가. 모처럼 가져온 것을 안 받는다면 정의가 아니지 않는가.” 사속들이 권에 못 이긴 듯이 모두 음식을 먹고 돌아가려는데 현령이 “오늘은 이렇게 되었지만 아무 ..
2022.08.31 -
[우리말] 비의 종류를 찾아보니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점심을 먹고 들어오다 비를 맞았다. 부슬부슬 나리더니 조금씩 세차게 퍼붓다가, 그치는 듯하더니 또 내리기를 반복한다. 우리 지역에는 가뭄이 심해 비가 계속 왔으면 싶다가도 들판의 익어가는 벼를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우중충한 먼산을 바라보니 의기소침하다.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하면서 비의 종류*를 찾아본다. 무슨 낱말이 이렇게 많은지 놀랍다. 한 단어씩 훑어보면서 우리나라 사람의 풍부한 감성을 새삼 깨닫는다. * 비의 종류가랑비 – 조금씩 내리는 비로 이슬비 보다가 굵으나 가늘게 내리는 비 가루비 – 가루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비 가을비 - 가을에 내리는 비 개부심 - 장마에 큰물이 난 뒤 한동안 쉬었다가 한바탕 내리는 비 건들장마 - 초가을에 쏟아지다가 잠시 개고 또 내..
2022.08.30 -
용천사 부도군을 보고
청도 용천사* 뒷산에 석종형 부도가 6기 있다. 5기의 주인공은 17~18세기 중창 당시의 고승들로 대허(大虛), 회진(會眞), 청심당(淸心堂), 우운당(友雲堂), 사송당(四松堂)이며, 용천사 쪽으로 백여m 떨어진 곳에 백련당(白蓮堂) 부도가 홀로 서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있다. 멀리서 보니 부도가 스님이 가부좌한 뒷모습 같아 보였다. 부도(浮屠)는 존경의 마음이 담긴 석조물이다. 선문의 제자들이 그들의 조사(祖師)를 숭앙해 입적 뒤에 추앙하려고 남긴 장골처(藏骨處)이기 때문이다. 조성 당시의 분위기는 알 수 없으나, 부도군이 사찰과 멀리 떨어져 있어 지금은 찾는 사람이 드물다. 봄에 경주 서악리고분군을 다녀왔다. 무열왕릉 위쪽에 왕릉으로 추정하는 능이 네 기 있었다. 규모가 무열왕릉과 ..
2022.08.29 -
황홀한 잿빛 구름
아파트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서쪽 하늘. 노을이 없어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잿빛 구름. 나도 저 구름으로 떠 있고 싶다. (2022.8.28.19:20)
2022.08.28 -
만물은 이어져 있다
친구네 블루베리 농장은 이사 중이다. 블루베리는 방기하고 필요한 자재만 가져간다. 몇 달 전부터 조금씩 옮겼는데 올해 수확이 끝나자 남은 자재를 마무리 철수 중이다. 이사하는데 손을 보태려고 갔다. 농장이 썰렁했다. 자재들이 빠져나간 곳이 텅 비어 횅했고, 수돗가에 파논 작은 물웅덩이는 개구리들이 점령했고, 멧돼지가 농장 곳곳을 파헤쳤다. 섬뜩했다. 2주 전에 농로를 뒤집어놓아 차가 빠져 난처했는데, 이제는 블루베리 밑동의 먹이를 찾으려고 나무를 통째 파헤쳤다. 농장에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니 멧돼지가 산에서 눈치채고 찾아오다니 신기하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헛말 아니었다. 블루베리 나무가 들을 수없는 아우성을 친 것일까. 잠시 사람 손이 타지 않는다고 개구리와 멧돼지가 찾아드니,..
2022.08.28 -
[우리말] 구름의 종류
하늘 도화지가 너무 커서 바람은 왼쪽에 이 구름, 오른쪽엔 저 구름*을 그렸다.낙서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붓 터치를 한 것 같기도 한데,조금씩 변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낙서는 아닌 것 같다. * 구름을 나타내는 예쁜 우리말들 / 이대성(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출처: 〈나라경제〉 2016년 8월호우리말에는 구름의 높이, 모양 또는 색깔에 따라 다양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구름을 가리키는 말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어지간히 높은 산에만 올라가도 굽어볼 수 있을 만큼 낮게 떠 있는 구름을 ‘밑턱구름’이라고 합니다. 그 반대는 ‘위턱구름’입니다. 밑턱구름 중에서도 비가 올 때의 산간 지대나 이른 아침의 평야 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안개구름’입니다.밑턱구름보다는 높은 곳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
2022.08.27 -
매미는 오늘도 운다
뒷산의 우렁찬 매미 소리. 일주일 전부터 잠잠해지던 울음이 오늘 우렁차다. 무슨 주식 그래프도 아니고, 매미 소리도 오르락내리락하는가? 자연의 조화가 오묘하도다. 그래, 삶이란 매미처럼 이렇게 끈질기고 열심히 하는 거다.
2022.08.26 -
고정차를 마시며
ㅇㅇ시에서 찻집 하는 친구로부터 고정차(苦丁茶)를 선물 받았다. 차를 달이는 간이용기까지 주면서 혈액순환과 배뇨 작용 등 건강에 효과가 있다면서 꼭 음용하라고 당부한다. 친구의 고마운 마음을 받들어 사무실에 가져다 놓고 매일 아침 커피 대신 고정차를 우려 180ml 정도 마신다. 길게 돌돌 말린 윤기 도는 검은색 찻잎을 하나, 용기에 넣으면 따뜻한 물에서 풀려 찻잎이 펴졌다. 쓴맛인데도 입안에 감칠맛이 가시지 않고 고여 뒷맛이 근사하다. 노란 찻물에 어리는 친구를 그리워한다.
2022.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