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4. 07:53ㆍ입맛
여름내 보지 못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봄부터 여름까지 계절 사업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겨를이 생기자 가까운 친구들과 점심 먹으러 <성화축산>에 갔다. 투 뿔 한우를 취급하는 성화축산에서는 매주 화요일에 8,500원짜리 한우국밥이 6,500원, 목요일에는 15,000원 하는 왕 육회밥이 9,900원이다. (단 공휴일 제외) 공짜라 싶을 정도로 가성비가 좋은데 하필이면 오늘은 수요일이다. 살짝 아쉬운 마음으로 왕 육회밥을 주문했다.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처럼 '밥 반 육회 반'이었다. 고르게 싹싹 비벼 허약해진 원기를 보충하려는 듯 우리들은 볼이 미어지게 맛있게 먹었다.
1층 빽다방에 내려가 따뜻한 아메리카노(1,500원)를 한 잔씩 받아들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옥상에 올라갔다. 햇살이 벤치에 가득 쏟아졌다. 선선한 바람도 불었다. 가없이 펼쳐진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한쪽에는 구름 띠를 그었고 다른 한쪽은 바람이 훑어간 흔적을 남겼다. 심쿵한 가을이다. 누군가 가을은 여름이 타다 남은 것이라고 했다. 어불성설 같다. 타다 남은 찌꺼기라면 이렇게 아름다울 리 없다. 만물은 봄에 움이 트고 여름에 익고 가을이면 결실을 보아 겨울을 견뎌낸다. 저마다 제 역할이 있다. 늘그막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2024.10.2.)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
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
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일 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별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과실이 익을 대로잘
익어/ 마지막 감미가 향긋한 포도주에 깃들일 것
입니다.// ....../ 지금 혼자만인 사람은/ 언제까지
나 혼자 있을 것입니다./ 밤중에 눈을 뜨고 책을
읽으며/ 긴 편지를 쏠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
질 때 불안스러이 가로수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을/ 왔다갔다 걸어다닐 것입니다. <R. M. 릴케/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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