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국립박물관에서

2024. 9. 9. 07:51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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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국립박물관에 갔다. 모든 입장객이 무료입장이었다. 외국의 조그만 박물관도 유료인 데 의아했다. 하지만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신라 천 년의 문화유산을 살펴볼 기회가 확대된다는 생각도 든다. '통 큰 대한민국'이라거나 볼거리가 부족한 징표가 되지 않을지 살짝 우려도 되긴 했다.

성덕대왕신종 종각으로 먼저 갔다. 거대한 종은 위엄이 서려 있었다. 멀리 있는 사람을 위해 종은 울리는 데 소리가 어떨지 궁금할 즈음, '드엉' 울렸다. 소리가 선명하고 장엄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자동으로 들려주는 녹음이었다. 종소리가 날 때마다 깊은 산속의 산사가 보였다가, 스님 독경 소리도 들렸다가, 종소리를 어머니께 보여 드리려고 보자기로 싼 송찬호 시인까지 떠올랐다. 현대인들이 성덕대왕신종을 보고 들을 수 있는 행운은 세종대왕 덕이다.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신종을 녹여 없애버리자는 여론이 팽배할 때 세종이 이를 가로막았다. 자칫하면 용광로에 들어가 화포가 될 뻔한 순간이었다. 서양의 종은 안에서 때려 소리를 내지만, 동양은 밖에서 두드린다. 당연히 더 우렁차고 더 엄숙하다. 신종에서 선조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종각에서 신라역사관으로 가는데 갑자기 비가 오지게 내렸다. 대나무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를 내면서 허공에 빗금을 긋는 소나기가 내리쏟아졌다. 회랑을 돌아 이층으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역사관과 특별전시관, 신라미술관을 거쳐 옥외로 나오니 비가 그쳐 날이 갰다. 각 건물을 이어주는 회랑이 있었다면 박물관이 백 점일 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외 전시장에 거인 같은 고선사 터 삼층 석탑이 어서 오라 인사한다. 생김새가 어디서 본 듯하다. 기억이 날듯 말 듯했다. 가끔 박물관에 왔을 때 슬쩍 눈길을 주었을 뿐, 알 턱이 없다. 처음 보는 문화유산을 알려면 현지 안내판을 읽을 필요가 있다. 궁금증이 바로 풀렸다. 고선사는 경주시 암곡동에 있던 절로 원효 대사가 한때 머물렀다. 고려 현종 때까지 기록은 있으나 언제 폐사됐는지는 알 수 없다. 1975년 절터를 발굴하면서 석탑을 박물관으로 옮겼다. 절터는 현재 덕동댐 건설로 물에 잠겼다. 높이 10.2m, 82장의 돌로 구성된 석탑은 감은사 터 삼층 석탑과 쌍둥이 형제 같다. 고선사 터 삼층 석탑의 건립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없어 출생 연도를 따질 수는 없지만, 동생일 듯하다. 한참 바라보노라니 듬직한 석탑이 -종교를 떠나- 무언가 믿음을 주는 포스를 느끼게 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정원 잔디에 목이 잘린 불상과 불두를 여럿 보았다. 조선 시대 억불숭유로 반불교적 사상을 가진 선비들이 해코지할 작정을 하고 벌인 결과다. 씁쓸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무지렁이도 아닌 선비들의 이런 이념과 사상 행태는 그 후 사색당파의 씨앗이 됐을 거다. 지금도 유형을 달리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없지 않다. 박물관은 과거가 모인 곳, 미래는 오늘의 우리에게 달렸다. (2024.8.29.)

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으로도 불린다.(국보)
고선사 터 삼층 석탑(국보)
다보탑과 불국사 삼층 석탑(석가탑) 모조품이 옥외에 전시돼 있었다. 아름다웠지만, 불국사 현장에서 보던 느낌과 완전히 달랐다.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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