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에서 사케를

2024. 9. 6. 08:53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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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산처럼 어진 仁山이 단골 중식당 <화중>으로 친구들을 불렀다. 이번에도 아들이 일본에서 사케를 사 왔다면서 한 병 들고 왔다. 술 안 먹는 인산에게 출장 때마다 주류를 사다 주는 아들이 효자다. 우리가 부러운데 본인은 얼마나 좋을까. 친구에게 사케 맛을 보여주려면 거금까지 써야 하는 데도 즐거운 표정이다. 친구들이 다 모여 화중의 시그니처 메뉴인 전가복 두 개와 참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콜키지가 별도 없어 참소주 몇 병을 추가했다.

가져온 술은 아사히 주조의 '닷사이 준마이 다이긴죠 23'* 사케였다. 여덟 명이 소주잔으로 건배했다. 다들 몇 잔씩 돌아갔는데 금주하는 이가 있어 두어 잔 더 마셨다. 술맛이 은은하고 부드러웠다. 차게 해 가져왔더라면 상큼한 맛을 더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술은 이름이 짧은 데 비해 일본 술은 길다. 지난번 마신 술 이름도 기차 고삐같이 긴 '핫카이산 다이긴죠 코와구라 720ml'였다. 정미율이나 양까지 술 이름에 들어 있으니 꼼꼼하고 세심한 일본 민족성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닷사이'도 '수달의 제사'라는 뜻으로 아사히 주조의 투자 신념을 나타내는 말이라니 그저 놀랍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 술 이름이 더 좋다. 참, 참이슬, 좋은데이, 처음처럼, 즐거워예, C1(시원), 잎새주 등등…. 짧고, 정적이고, 상상력을 높여준다.

친구들이 여럿이 모여 함께 술 마시면 혀가 길어진다. 즐겁게 떠들고 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지나간 화제도 자유자재로 거침없이 주고받는다. A가 B에게 연초에 펑크낸 술 약속을 때우라고 넌지시 말했다. 능글맞은 B는 추석 쇠고 보자며 어물쩍하게 넘어갔다. 모두 웃으며 자리를 파했다. 밖에 나와서도 헤어지기에 섭섭해 실속 없는 빈말들이 한참이나 오갔다. 사케와 인산의 온정 덕분이다. (2024.9.4.)

* 닷사이 준마이 다이긴죠 23 : 아사히 주조에서 압착이 아닌 원심분리기로 맛과 향을 담은 최고급 청주. 용량 720ml, 도수 16%, 정미율 23%, 산도 1.1로 사케의 전통적 감칠맛과 경쾌한 맛이 일품이다. 주조미(酒造米)의 정미율에 따라 70% 이하를 준마이, 60% 이하를 준마이 긴죠, 50% 이하는 준마이 다이긴죠로 등급이 나누어진다. 정미율이 낮을수록 고품질이다. '준마이'란 명칭이 들어가면 쌀과 누룩으로 만든 것이다. 71% 이상은 양조용 알코올을 넣은 보통 술이다.

전가복 소짜(100,000원) 4인용 정도.
우드 케이스(닷사이)
닷사이 준마이 다이긴죠 23.
들어갈 땐 훤했는데 나올 때는 밤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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