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 식당의 옻닭을 먹으며

2024. 3. 21. 19:44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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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점심 먹으려고 옻닭집으로 유명한 <대현 식당>에 갔다. 이 집의 옻닭을 먹으러 다닌 지도 삼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오랜만에 찾아간 식당은 외형상으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있다면 주변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상전벽해가 됐고, 식당도 재개발 지역에 포함돼 이전해야 할 처지라는 것뿐이었다. 사장 아들이 도로 앞에서 주차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도 중년이 훌쩍 지났다. 돈을 엄청나게 벌었을 텐데 복장이 검소했고 'ㄱ'자 한옥인 식당은 헌 집이 됐다.

마당에 들어서니 큼직한 액자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부터 부엌 바깥에 걸렸는데 빛이 바래고 낡았다. 하나는 시혜종덕(施惠種德), 다른 하나는 수여산 복수해(壽如山 福隨海)다. 전자는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라는 채근담에서 따온 글귀*이고, 후자는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복을 지니라는 입춘 축 글귀다. 장삿집 액자치고는 품격 있고 의미심장하다. 잘되는 집은 포부가 남다르고 사려 있는 것 같다. 한옥의 손님 방은 아직 좌식 테이블이다. 입식으로 교체하기에 좁아 애매하다.

옻닭이 금방 나왔다. 밑반찬으로 파무침과 김치, 깍두기, 양념 마늘이 한 종지씩 나오고, 크지 않은 뚝배기에 한약 같은 짙은 갈색 국물에 기름기가 반들거렸다. 그 속에 5~6호로 보이는 작은 닭 반 마리가 통째 담겼다. 밥은 옻닭 국물에 안친 듯 노오란 색이 살짝 비쳐 먹음직스러웠다. 푹 삶긴 옻닭은 젓가락질에 쉽게 잘렸다. 국물은 향긋하면서 깊은맛이 났고 찹쌀 섞인 밥은 맛있고 찰졌다. 닭은 온마리의 삼계탕과 달리 반 마리였지만 양이 모자라진 않았고, 닭고기 맛보다 국물과 밥, 파무침이 잘 어울렸다.

옻닭은 가다듬은 닭을 옻나무 껍질 따위와 함께 삶아 조리한 전통 요리다. 여름철 보신용 건강식이라지만, 국물의 시원함을 사시사철 즐기는 이가 대다수다. 술꾼들은 위장에 좋다고 해 주기적으로 먹기도 한다. 출처는 분명찮지만, 옻닭의 원형은 '옻개'라고 한다. 예로부터 개를 잡아 옻나무를 넣어 단체로 개장을 해 먹던 것이 소형화돼 옻닭으로 변했다. 회식할 때는 옻개를 먹으러 팔공산 인근 식당을 한때 애용하기도 했다. 연초에 '개 식용 금지법'(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2027년부터 시행한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던 오랜 역사와 전통의 음식들도 시류에 따라 사라질 것이다.(2024.3.19.)

* 채근담의 글귀 : 平民肯種德施惠(평민긍종덕시혜) 평민이라도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면/ 便是無位的公相(편시무위적공상) 곧 벼슬 없는 재상이며/ 士夫徒貪權市寵(사부도탐권시총) 고위 관리도 권세를 탐내고 총애를 팔면/ 竟成有爵的乞人(경성유작적걸인) 곧 벼슬 있는 걸인이 될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은 송나라 홍자성의 책으로 전집 225장, 후집 134장 총 359장(章)이다.

북구 대현로10길 54(대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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