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4. 09:36ㆍ입맛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에는 거뜬하게 이겨냈는데 이제 와 코가 막히고 목이 따갑다. 꽃 피는 봄날에 감기에 걸리다니 어처구니없다. 주말이라 감기로 꼼짝하지 않았더니 집사람이 점심 먹고 나자 쑥 캐러 가자고 한다.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자동차 운전대를 잡았다.
가까운 영남대학 수변공원인 삼천지 둑으로 갔다. 기온이 올라갔고 하늘은 파랗다. 둑에는 개나리가 만발하고 햇볕이 더없이 따스했지만, 캠퍼스나 둑방 길에 두런거리는 인적이 없으니 부질없어 보였다. 지난겨울 피었다 진 갈대와 시든 연꽃 줄기가 삼천지의 반을 차지했고 알 수 없는 종류의 울음소리가 끙, 끙하며 들려왔다.
자잘한 쑥들이 땅바닥에 오종종 붙어있었다. 키가 작고 돌이 많아 캐려면 수고롭겠다. 쑥 앞에 주저앉았다. 준비해 간 과도를 쥐고 쑥을 캐기 시작했다. 허브를 만지면 향이 나듯 쑥 향이 진동했다. 하지만 삼십여 분 지나니 허리가 쑤신다. 캔 쑥을 집사람에게 넘겼다. 며칠 전 난전의 할머니가 쑥 한 움큼을 사천 원에 파는 것을 봤다. "비싸게 파는구나" 싶었는데 막상 캐보니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직접 해 봐야 안다. 섣불리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알고 있으면서 자주 놓치는 부분이다. 쑥을 캐다 말고 둑방을 순찰했다. 강태공들이 몇 명 있었고 처음 보는 장비가 신기했다.
집사람이 두 시간 정도 쑥을 뜯었다. 검불을 다시 확인하고 깨끗이 다듬은 후 도다리를 사려고 경산 공설시장으로 갔다. 활어가 없어 선어를 샀더니 상인이 재빨리 다듬어 주었다. 집에 돌아와 도다리를 식초 물에 담가 비린내를 잡은 후 도다리쑥국을 한 냄비 끓였다. 외식에서 먹던 자연산 국 맛에 미칠 수 없지만, 범부의 저녁상으로는 만점이었다. 제절 음식에다 은퇴하고 처음 먹어보는 기쁨도 숨어있었다. 도다리쑥국은 도다리보다 쑥이 우선이다. 쑥은 한 철이고 도다리는 사철 먹을 수 있다. 부드럽고 향이 강한 쑥과 도다리의 담백함이 만나 봄 입맛을 깨운다. 내년에도 쑥을 뜯는다면 활어를 사고 뜨물을 준비해 더 맛있게 끓여야겠다. (202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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