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3. 01:17ㆍ입맛
백수로 산 지 여덟 달째다. 며칠 전 시니어 클럽을 찾아가 내년도 일자리 신청서를 냈다. 접수자가 "합격하면 연락하고, 연락 없으면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복불복이련만, 신청자가 너무 많아 보였다. 불합격이면 갑진년 정초 운세를 그르치는 염려가 됐지만,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인 꽃놀이 패다. 그러려니 하며 기다리자.
한 직업을 오래 다녔다. 광이 반짝반짝 나는 파릇한 청춘 때, 부서 간 협의가 필요해 서무 단합 대회를 하기로 했다. 대회라야 다름 아닌 술추렴으로 의기투합하자는 거였다. 비용을 갹출하려 했는데 잘 나간다는 소문난 A가 한 턱 쏘겠다며 깃대를 잡았다. 퇴근해 시내 한 식당에서 열세 명이 모였다. A는 달랑 삼겹살 이 인분을 시켰다. 그 정도면 손님으로 받아주지 않을 텐데 주인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통했다. 다들 어이가 없었지만 기본 안주로 강소주를 마셨다. 불판에 삼겹살이 지글거렸지만, 집는 사람이 없어 소주 두 병씩 마시고 나올 때까지 남았다. 밖으로 나온 A가 2차를 가자고 했다. 술이 어지간한 사람들은 귀가했고 일곱이 맥줏집에 들어갔다. 소주를 마신 데다 생맥이 전신을 휩싸니 마음이 풀어졌다.
2차를 나와 헤어지려는데 A가 또 '내가 깃대를 잡았으니 3차를 하자'고 졸랐다. 일곱은 다 같이 '조옷타'라고 맞장구쳤는데 세 명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3차는 네 명이 됐다. A는 인원이 많아 장난쳤다면서 푸근하게 잘 냈다. 마지막까지 남은 녀석들은 모두 고주망태가 됐다. 어쨌든 며칠 뒤 업무 협의 결과는 좋았다. 그 시절에 약은 자가 있었듯이 오늘날도 그런 사람 있다.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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