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굴비는 아홉 번 죽는다

2023. 11. 21. 06:39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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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보리굴비였다. 서른 마리가 넘는 보리굴비가 네모난 목 쟁반에 한 마리씩 드러누워 사람의 손길을 빤히 기다렸다. 이윽고 녀석들은 갈기갈기 찢기고 뜯겨 나가서 장렬하게 생애를 마쳤다.

조기를 말린 것이 굴비다. 보리굴비는 굴비를 항아리 속에 담아, 보리를 채워 비린내를 날려 숙성시켰다. 고추장 굴비라 하면 고추장에 박아서 발효한 것이다. 예로부터 밥을 물에 말아 보리굴비나 고추장 굴비와 함께 먹는 것을 별미로 쳤다. 나는 녹찻물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를 먹었는데 짭짤해 다른 찬이 있어도 굴비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식사를 마친 후 ○○ 선생님이 보리굴비는 아홉 번 죽는다고 알려주었다. 처음 잡힐 때 그물에 걸려 죽고, 냉동하므로 얼어 죽고, 굴비가 되느라 소금에 절어 죽고, 끈으로 엮을 때 졸려 죽고, 해풍에 건조할 때 말라 죽고, 숙성하느라 다시 냉동실에서 얼어 죽고, 부엌에서 칼 맞아 죽고, 불판 위에 올라가 굽혀 죽고, 마지막으로 사람 입에 들어가 죽는다고 했다. 어려운 요리 과정을 설명한 말씀이 의미심장했으나 그것은 굴비에 관한 이야기. 나는 문득 사람은 한 번만 죽어야 한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아니고서야 두 번 죽는다면 불명예스러울지 모를 일이다. (2023.11.20.)

앞산순환로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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