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2. 11:06ㆍ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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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친구를 기다리다 무료해 빨대를 휘휘 젓는다. 얼음과 커피가 빙빙 돌면서 까마득한 과거로 나를 데려간다.
1968년 초여름. 절친 네 명이 봉정 금호강 강가로 캠핑 갔다. 헌 옷이 캠핑복이고 운동화에 목이 긴 양말을 바짓단 위로 끌어 올려 신었다. 배낭은 양옆에 주머니 달린 키슬링*이었다. 네 명이 모두 배낭을 멨는지는 기억이 영 나지 않는다. ‘대구선’* 열차를 타고 봉정역에서 내렸다. 강을 끼고 앉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군용 A형 텐트를 쳤다. 캠핑 맛을 높이려고 멋으로 설치했는데 때가 사춘기라 어렴풋이 낭만을 흉내 낸 것 같다.
솥밥을 지었다. 네 명이 밥해 먹을 코펠*이 없어 집에서 쓰는 솥을 가져왔다. 점심을 해먹은 후 커피를 마시려고 솥을 깨끗이 씻었다. 물을 가득 끓인 후 커피와 설탕을 엄청 넣어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까만 물이 한 솥이었다. 향이 은은했다. 한 모금 맛보니 꿀물처럼 감미로웠다. 온몸이 커피향에 젖었다. 처음 느끼는 신비한 맛이었다. 그때는 가정집에 커피가 흔치 않았다. 부유한 집 아들인 김정ㅇ이 집에서 설탕과 커피를 병째 가져왔었다. 네 명은 황홀한 맛에 숭늉 마시듯 꿀꺽꿀꺽 단숨에 한 솥을 다 비웠다. 밥을 배불리 먹은 데다 커피 한 솥을 마셨으니 배가 남산만 해졌다. 모두 단잠에 빠져들었다. 깨어나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그날은 커피만 마시는 캠핑이 되고 말았다.
학창 시절에 처음 맛본 커피는 감미로웠다. 세월이 흘러 지금 마시는 커피는 설탕을 달게 태워도 그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 차이는 무엇일까. 네 명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뿔뿔이 흩어져 소식을 알 수 없으니 너무나 아쉽다. 보고 싶다. (with: 하창ㅇ, 김정ㅇ, 손병ㅇ)
* 키슬링(kissling ruck sack): 옆으로 퍼진 가로형 배낭. 양옆에 주머니가 달려 용구 수납이 용이하다. 지금은 추억의 배낭이 되었다.
* 대구선: 대구(현재는 수성구 가천역)에서 영천까지 연결하는 철도 노선. 봉정역은 2017. 12월 폐역되었다.
* 코펠: 야외용 조립식 취사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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