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5. 16:37ㆍ일상다반사
염색이 풀려 귀밑으로 흰머리가 경계선 치듯 줄을 그었다. 추석이 코앞이라 이발했다. 연초에 이발소에서 염색한 후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 그다음부터는 미용실에 다녔다. 커트는 이발소만큼 할 수 없으나 염색은 아주 잘했다. 매월 한 번 하는데 머리카락이 자라면 덥수룩했다. 덥수룩한 이유가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고 얼굴이 못난 탓도 있겠지만, 커트 영향도 있으니만큼 이번에는 이발소에 갔다. 집 가까운 곳을 가니 출입문에 예약 전용이라고 써 붙여 놓았다. 그 자리에서 카카오맵으로 검색해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이용소가 있었다. 의자가 두 개밖에 없는 오래된 듯한 작은 업소다. 빼꼼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에 늙수그레한 이용사가 안채에서 나왔다. 표정이 인자해 보였다.
사각사각, 머리카락 자르는 가위질 소리가 빠르고 정교했다. 미용실의 전동 바리캉 소리와 비교할 수 없이 성의 있게 들린다. 이용사는 요즘 아이는 엄마 따라 미장원에 가서 머리 깎으러 안 온다고 하면서 성인도 미장원에 다녀 손님이 적다고 했다. 전문가가 머리를 딱 보면 알 텐데 마치 나보고 하는 말 같아 찔끔했다. 머리를 요리조리 살펴 가위질하고 목덜미와 귀의 잔털까지 정성껏 면도했다. 염색하면서 약에 관해서 몇 가지 설명도 했다. 염색이 마를 동안 눈을 감고 앉은 채 살짝 졸았다. 그동안 손님 한 분이 이발하고 갔다. 염색 알레르기 때문에 미용실에 다녔다는 말을 의식한 듯 머리를 감을 때는 힘 주어 매매 씻어주었다. 눈썹까지 염색해 주어 인상이 확 달라졌다.
이용사는 "머리는 이발소에서 나이 많은 이용사에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뜻 들으면 자기에게 또 오라는 소리 같지만, 경력 있는 전문가를 지칭했을 테니 장인 정신이 돋보였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시원하고 삼빡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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