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1. 09:50ㆍ입맛
술을 처음 마신 날은 1972.12.24. 밤이었다. 지원 입대해 14주 신병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은 날이다. 트럭에 실려 산 넘고 물을 건너 짐짝처럼 내려진 곳은 어스름이 짙게 깔린 산속의 어느 부대였다. 일장 훈시를 들은 후 동기들과 한 내무반에 도열해 앉았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양손을 뻗어 무릎 위에 올린 군기가 바짝 든 모양새를 갖췄다. 한 사람 앞에 세숫대야가 하나씩 놓였다. 곧 막걸리가 가득 부어지고 술잔으로 양은그릇 하나씩 띄워졌다. 일발 장전 구령에 맞추어 한 사발(그릇)씩 퍼 들었다. 나는 아둔했으나 술을 못 마신다고 자진 신고할 만큼 분위기 파악을 못 할 바보는 아니었다. 발사 구령이 떨어지자 쭉 들이켜야 했다. 한 세숫대야를 다 마시고서야 신고식이 끝났다. 그날이 크리스마스이브였고 나의 첫술이었다.
수주(樹州) 변영로의 <명정 사십 년>에 비할 바 아니지만, 분수를 넘거나 희한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93년쯤 어느 날 카페에서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며 정부 정책 비판에 열을 올렸다. 가까이서 혼술하던 안기부 간부 ○○○와 조우했다. 비판을 과하게 했던 터라 안기부 간부니 쪼랐다. 안기부 서슬이 대단할 때였다. 그런데 그가 자리를 룸으로 옮겨 술을 샀다. 그는 방북단 일원으로 김일성과 만났던 모양이다.
김일성과 마신 '화합주'라는 것을 만들었다. 큰 양푼에 양주 한 병과 맥주 몇 병을 부어 만든 소위 폭탄주였다. 양이 엄첨 많아 놀랐다. 동석한 사람이 돌려가며 마시는 것인데 마지막에는 한 방울도 남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앞 사람이 조금만 마시고 돌리게 되면 뒷사람이 낭패를 보게 되거나 술이 남게 되니, 각자 자기 분량만큼은 최대한 마셔야 실패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화합'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지금은 잊었지만 비판 내용을 직장에 통보하면 난처할 것 같아 동료 넷이 한마음으로 벌컥벌컥 마셔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조금 얼근했고, 기억에 남는 술자리로 남았다.
오늘은 지인이 자동차에 중국술이 한 병 있으니 먹자고 했다. 트렁크에서 술이 든 빨간색 쇼핑백을 꺼내 호기롭게 단골 중식당으로 들어갔다. 여사장님이 반갑게 좌석으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아 쇼핑백 안에 빨간색 주머니에 든 술을 꺼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지 술이 한 방울도 없는 빈 병이었다. 지인은 당황해하면서도 언제 마셨는지 하얗게 잊고 있었다. 돈이 없어 공술을 마신 적은 있었지만, 빈 술병 들고 술 마시러 가기는 오십 년 주력사(酒歷史)의 처음이었다. (2019.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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