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4. 08:34ㆍ입맛
주일에 한 번은 낮술 한다. 일할 때는 예외지만 거의 십 년이 돼 간다. 은퇴한 후 얼굴이라도 보려고 시작한 점심에서다. 혼잡 때를 피해 조금 늦은 시각에 맞춘다. 맹숭하게 밥만 먹을 수 없어 반주를 곁들인다. 대개 인당 반병 꼴은 치인다. 이게 오래되니 낮술 하려고 밥 먹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상시로 참석하는 여섯 사람 중 세 사람이 만났다. 밥 먹는 고깃집에 가니 밥은 뒷전이다. 낮술에 취하면 아버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 일이야 없지만 나의 아버지는 별이 되신지 까마득하다.
아버지는 오주(午酒)를 잡숫지 않으셨다. 석양주(夕陽酒)만 즐기셨는데 그 시절엔 돈이 아주 귀해 대부분 안주 없이 멸치나 김치 등으로 드신 거다. 강술 다름 아니었다. 가족을 생각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나는 형제 중에서도 아버지 체질을 많이 이어받았다. 그렇더라도 안주 없는 강술은 먹지 않는다. 소주가 삼백 원일 때 안주가 오천 원은 돼야 마셨다. 지금은 물가가 올랐지만, 변함없는 버릇이다. 아버지만큼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들은 체질상 술을 마시지 않으니, 나로서는 다행 중 불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큰돈 드는 일도 아닌데 애주가 아비가 아들과 술 한잔 나누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니 말이다. 깬 사람들은 아니라지만 나에겐 낮술이건 밤술이건 술친구가 베프*인 거다. (2023.9.21.)
* 베프(BF): '베스트 프렌드'를 줄여 이르는 말로, 서로 뜻이 잘 맞으며 매우 친한 친구를 이르는 말. 베프의 줄임 말은 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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