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 07:46ㆍ일상다반사
오늘 지역의 ㅇㅇ신문에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기념전, 팔공산 일대 지역, 지명 유래'를 전시 소개한다는 그럴싸한 기사가 났다. 점심을 먹고 전시하는 곳으로 갔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 전시실 통로의 유리창에 달랑 사진 9장 붙여 놓고, 그 아래에 지명과 유래 몇 줄을 적어놓았다. 무더위인데 뉴스거리가 그렇게 없을까 싶어 씁쓸했다.
왕건과 팔공산 주변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봤다.
918년 왕건이 태봉(후고구려) 궁예를 몰아내고 철원 포정전에서 즉위하니 고려 태조다. 태조 10년(927) 후백제 견훤이 신라 서라벌을 공격해 경애왕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다. 왕건은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병력을 거느리고 개성에서 출발해 팔공산 기슭[칠곡 대왕골; 대구선명학교 송광매기념관 자리]에 도착했다. 왕건은 팔공산 일대에서 견훤과 세 번 싸워 모두 패했다.
첫 번째 싸움은 은해사 방향으로 가다가 매복한 견훤 군사와 맞닥트려 크게 패하여 영천 태조지(太祖旨)까지 퇴각했다. 군사를 수습해 능성재를 넘어 무태에서 지원군을 만난 왕건은 전열을 가다듬어 두 번째 싸움을 벌였다. 동하천을 경계로 서변 쪽은 고려, 동변 쪽은 후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일시적으로 승기를 잡은 왕건은 계속 진격하다가 파군재에서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이때 신숭겸 장군이 전사했다. 세 번째 전투는 평광동 실왕리 부근에서 또 한 차례 크게 싸웠으나 다시 패하고 말았다. 이때 김락 장군이 전사했다. 왕건이 세 차례 패한 팔공산 전투를 동수대전(桐藪大戰)이라고 일컫는다. 홍성의 운주대전, 안동 병산대전과 더불어 후삼국 통일전쟁의 3대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실왕리에서 패한 왕건은 안심, 반야월을 지나 금호강을 건너 팔현, 고모, 담티고개, 만촌네거리, 범어네거리, 봉산육거리, 청운맨션 후문, 앞산 공원의 은적사, 안일사, 임휴사를 거쳐 성주, 김천을 통해 개성으로 돌아갔다.
태조 왕건과 관련해 우리 지역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숱하다.
동수대전에서 전사한 여덟 장수*를 기리는 뜻에서 공산(公山)을 팔공산(八公山)으로 바꿔 불렀다. 왕건이 팔공산 기슭에 도착해 처음 주둔한 자리를 대왕골[大王谷], 퇴각하면서 지묘동 한 고개에서 견훤 군사의 추격해 오는 나팔 소리를 들은 나팔 고개, 군사들에게 적의 매복을 대비해 태만하지 말고 경계하라는 지시한 곳이 무태동(無怠洞), 연경동 쪽으로 이동하다가 마을에서 글 읽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겨난 연경동(硏經洞), 작은 하천을 두고 양쪽 진영에서 쏜 화살이 하천을 가득 메워 살내[箭灘], 왕건을 구해낸 신숭겸의 지혜가 뛰어났다고 해 붙은 지묘동(智妙洞), 신숭겸이 왕으로 위장해 싸워 왕건을 살린 산을 왕산(王山), 고려군이 후백제 군사에게 대패한 고개를 파군재[破軍峙], 왕건이 탈주하다 앉아 쉰 바위가 독좌암(獨坐岩), 어른들은 모두 피란 가고 아이들만 남아있어 불로동(不老洞), 탈출에 성공해 얼굴 가린 수건을 풀었다는 해안(解顔), 추격군을 벗어나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는 안심(安心), 날이 어두운데 중천의 달이 길을 비췄다는 반야월(半夜月), 흩어진 병사를 수습해 천지신명에게 승전 기원제를 올린 초례산(醮禮山), 전투 중에 태조 왕건을 잃었다는 실왕리(失王里), 왕건이 3일을 숨어지낸 은적사(隱跡寺)와 왕건 굴, 안전하게 피신하여 돌아갔다는 안일사(安逸寺)와 왕 샘[王丼], 왕건이 잠시 쉬어갔다는 임휴사(臨休寺) 등이 그때 붙여진 이름들이다. (출처: 김종욱의 대구이야기 요약)
* 여덟 장수 : 신숭겸, 김락, 김철, 전이갑, 전의갑, 전락, 호원보, 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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