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양 생고기

2023. 7. 29. 08:43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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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석양배 약속이 있어 지하철로 반월당역에 내렸다. 밖으로 나오니 후끈한 열기가 마치 목욕탕처럼 느껴졌다.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네거리 벤치에 노숙자 두 명이 앉아 있다. 새까맣게 그은 얼굴과 팔뚝, 때 묻은 복장과 배낭이 너무 남루했다. 언젠가 잡지에서 노숙자 르포 기사를 읽었다. 행색이 초라해도 마음은 태평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정말 그럴까, 멀리서 그들을 한참 지켜보았다. 미동도 안 하는 모습이 어쩌면 구도자 같아 보였다.

천천히 걸어 시내에서 친구가 하는 금방(金房)에 도착했다. ㅇㅇ 형님이 빵이 든 쇼핑백 두 개를 갖고 왔다. 가끔 선물용으로 사 오는데 받기만 한다. 미안한 마음으로 그만 가져오라는 인사에 "옆집이 파리바케트 아이가"라며 환하게 웃는다. 친구도 "건강에 좋다"면서 선물로 은목걸이를 걸어준다. 스무 돈이니 꽤 묵직했다. 오늘이 무슨 날처럼 횡재수가 뻗쳤다. 친구가 곧 가게 문을 닫았다.

초저녁인데 생고기 집 '녹양'에는 손님이 와글거렸다. 1973년 문을 열었는데 예전 명성을 되찾는 듯이 보였다. 좌석 여기저기서 이모님을 불러대니 서빙하느라 혼자 땀을 뻘뻘 흘린다. 생고기는 대구 십미(十味)의 하나다. 한우의 앞다리나 뒷다리 고기로 도축 후 얼리지 않은 쇠고기다.  참기름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쫄깃한 식감에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싱싱한 특성으로 직장인들이 술안주로 즐긴다. 곁들이로 간, 천렵, 허파 등이 나오고 등골은 요즘 잘 보이지 않는다. 소맥으로 속을 덥힌 후 참소주로 정을 나눈다.

주석을 마치니 밤거리는 청춘들로 붐볐다. 쇼윈도 불빛이 한층 밝아 보였다. 나이 든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반월당 네거리 벤치에, 낮에 본 노숙자 중 한 명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형님에게 받은 빵을 나눠 주고 지하철역으로 내려왔다. (2023.7.27. with: 순ㅇ 형님, 정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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