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자전거를 보고

2023. 7. 20. 08:57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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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사무소에서 아파트에 방기된 폐자전거를 수거해 한곳에 모았다. 타이어 바람이 빠지고 부품이 뒤틀려 보기에도 흉한 것들이다. 눈대중으로 대략 백여 대는 되겠다. 한때는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토사구팽(兎死狗烹)됐다. 용도 폐기된 자전거는 보기에도 안 좋고 생활 불편을 주기도 하는데 정리한다니 잘하는 일 같다. 자전거에 관한 추억이 두 가지 떠오른다. 하나는 사실이고 하나는 허상이다.

중학생 때 아버지 자전거를 빌려 타고 친구 셋과 경주 라이딩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요즘같이 기어 달린 날씬한 자전거는 보지도 못하는 시절이었다. 수중에 여비도 없이 마음만 가지고 무작정 출발한 여행이었다. 경주까지는 겨우 갔는데 돌아올 때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금호재를 넘어오면서 힘에 부치고 허기져 길가 밭의 감자를 서리해 생으로 먹어야 했다. 그때의 무모한 여행에 얼마나 혼이 났던지 자전거 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또 하나는 ET 영화가 선풍적 인기를 끌 때였다. 1994년 LA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갔더니 ET 영화 체험관이 있었다. 성(姓)을 등록하고 영화에 나온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으면, 영화 장면처럼 둥근 보름달이 뜬 밤하늘에 오를 수 있었다. 보름달 앞을 지나갈 때 ET가 나타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악~, 기임~, 이~ 하며 등록한 성을 느릿하게 불러주었다. 서양인은 이름을 불렀는데 한국어는 발음이 어려워 성을 불러주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짜릿했다.

소년 시절에 자전거 타는 것은 눈뜨고 꾸는 꿈☆이었다. 철없던 시절 혼이 났지만, 그때의 달콤한 기분이 가슴속 어딘가 숨어있었나 보다. 가끔은 사이클을 타고 바람과 함께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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