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2023. 6. 25. 06:55ㆍ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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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이 없으니 김빠진 맥주 신세와 다름없다. 밥벌이할 때는 바쁜 와중에 독서도 일이었다. 이제 시간 부자가 되어 널널한 여유 속에서도 책 읽는 게 오히려 따분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미술이나 악기, 외국어라도 배운다는데 나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 시작도 하기 싫다.
끊었던 담배를 피운 지 두 달 됐다. 하루가 지루하고 게으름이 늘다 보니 심심초로 입에 댔다. 반 갑이 한 갑이 되고 점점 늘어간다. 집에서 필 수 없어 아파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간다. 한 대 피우고 들어가면 곧 다시 나와야 하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번다. 한곳에 오래 있으면 눈총받을까 봐 30분쯤 지나면 자리를 옮긴다. 흡연도 눈치껏 해야 한다. 꽁초는 종이컵에 담고 딴은 주변의 꽁초도 줍는 인심을 쓴다. 몇 시간은 금방이다.
며칠 전 형뻘 돼 보이는 한 분과 조우했다. 벤치에 먼저 앉아 있는데 옆에 와 앉았다. 빈 벤치도 있는데 왜 곁에 앉나 싶었다. 그렇다고 말을 거는 것도 아니었다. 검은 마스크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왼손엔 휴대폰을 꼭 쥐고 앞만 응시했다. 한참 있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버렸다. 다음 날도 그 주변에서 만났다. 오늘 아침엔 다른 곳 벤치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았다. 한참 머물다 떠난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이 쓸쓸하고 고독하게 느껴졌다. 마치 나의 자화상 같다. (2023.6.24. 이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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