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못 왕버들을 보고

2023. 6. 20. 08:12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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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늙지 않아 좋겠다. 어린나무는 보았지만 늙은 나무를 본 적이 없다. 고목(古木)이라는 말도 사람이 일컫는 말이지 나무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며칠 전 사백 년 된 소나무를 봤다. 철갑을 두른 듯한 껍질이 장군의 갑옷처럼 믿음직했다. 감탄하여 어루만지니 긴 세월 풍상설우를 견뎌낸 굳건함이 손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서 늙어가고 피돌기가 쪼그라들건만 나무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정반대로 푸른 기운을 더욱 내뿜는다. 나무는 세월의 말 없는 산증인이다.

자녀가 어렸을 때 수성못 인근에 이십사 년을 살았다. 사계절 내내 산책을 하며 풍광을 즐기는 혜택을 누렸다. 못 주변에는 버드나무와 플라타너스, 느티나무와 벚나무 등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나무가 많았다. 예전에는 키가 아주 크고 몸통이 듬직한 미루나무가 늘어 서 있었는데 수종이 대체되면서 없어졌다. 동쪽 모서리에는 종류가 다른 나무 두 그루가 있다. 굵기가 한 아름이 넘는 왕버들이다. 밑동에서부터 비비 꼬여 골이 깊이 팬 거목이다.
못 둑을 걸으면서 ‘왕버들’을 왜 여기 심었을까 상상해 봤다.

수성못은 둔동제(屯洞堤)라는 관개용 못으로 조선조부터 있었다. 당시는 둘레가 1,429척이고 수심이 7척이었다고 한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둘레가 약 433m에 불과한 작은 못이었다. 지금은 2,000m에 이른다. 당초보다 5배 정도 확장했다. 이렇게 크게 만든 것은 일제강점기 때였다. 수성못 부근에 정착해 살던 일본인 미즈사키 린따로(水崎林太郞)가 수성들에 농업용수가 부족해지자 총독부 지원을 받아 1924.9.27. 공사를 시작해 1927.4.24. 완공했다. 그는 1939.12월까지 못을 관리하다 임종했다. 유언에 따라 전통 조선식 장례를 치른 후 수성못이 내려다보이는 남쪽 산기슭에 묻혔다.

왕버들 두 그루는 '수성못 확장 준공 기념'으로 심은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작은 못을 크게 축조했으니, 기념식수는 당연히 했을 것이다. 수종선택은 물 가까운 데서 잘 자라는 왕버들로 선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쪽에 심은 이유는 일본이 위치한 지리적 방향일 터고, 두 그루인 것은 조선과 일본을 각각 상징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당시에는 기념식수 표식을 했을 것이다. 석재가 아닌 목재를 사용했다면 조국 해방과 한국전쟁 등 모진 세월을 거치면서 없어지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못을 증축한 지 백 년이 다 되었다. 왕버들 수령을 전문가들은  백 년 조금 넘은 것으로 추측한다. 기념식 수목은 보통 든든하고 굵은 크기를 고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왕버들이 여기에 서 있는 것이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닐 것 같다.
오늘은 놀고 내일은 쉬어야 하는 나로서는 이런 상상이 시간을 같이 보내는 친구와도 같다. 때로는 그런대로 즐겁지 아니한가. (2023.6.19.)

왕버들
수성못 정경
미즈사키 린따로(水崎林太郞)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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