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6. 08:27ㆍ여행의 추억
서문시장에 들렀다가 인근의 달성공원에 갔다. 공원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은퇴 전 공원에서 어르신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동료들과 점심 봉사활동을 했지만, 급식을 마치면 곧바로 나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다녀오고는, 처음이다.
가장 먼저 기억난 것은 정문에 서 있던 수문장, 거인 류기성* 씨였다. 친절한 분이었으나 키가 워낙 커서 말을 붙이기조차 무섭기도 했다. 그땐 매표해 들어갔는데 가끔 요금을 내지 않으려는 얌체족이 생기면 그가 제지했다. 한 번은 택시 타는 것을 보았는데 뒷좌석에 엉덩이부터 넣어 몸을 웅크리고도 자리가 협소했다. 놀랍게도 키가 225cm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부상한 사실은 그 후에 알았다. 공원을 나오면서 직원에게 퇴직 후 별세했다는 말을 들었다. 바람은 훈풍인데 마음이 스산했다.
나무가 우거진 토성은 마치 둘레길 같았다. 숲이 우거진 흙길이 걷기 좋았다.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걷는 이도 보였다. 벤치가 많아 휴식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새벽에는 무료입장할 수 있었던 학창 시절, 복싱을 배우면서 집에서 공원까지 왕복 8km 로드워크 하던 일도 새삼스레 떠올랐다.
공원 안 동물원을 둘러봤다. 시설들이 예전과 변함없었다. 좁은 콘크리트 우사에 악취까지 그대로고 동물들은 스트레스에 절어 꼼짝하지 않거나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감옥보다 못할 것만 같았다. 동물 학대로 처벌받는 요즘으로는 충격적인 환경이었다.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타 도시 동물원을 보러 간다는 말이 납득되었다.
도심에 126,576㎡(38,289평) 규모의 공원이 있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방문객은 인근에 사는 시민이거나 장년층이 대부분이다. 공원이 늙었으니, 탐방객도 늙어졌다. 공원은 시민의 삶의 휴식처다. 동물원을 시급히 이전하고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하여 대구의 랜드마크로 탈바꿈해야 한다.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구경 올 수 있도록 현대에 맞게 변모시켜야 도시가 활성화한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원 이전지는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엑스코, 스타디움, 미술관의 접근성이 열악한 것을 감안해 보더라도 반드시 대중교통 접근이 용이한 곳이어야 한다. 대구가 3대 도시에서 밀려난 것이 인구 탓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내 신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원을 나왔다. (2023.5.24.)
* 류기성(1926~1998): 225cm 거인으로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해 무릎을 다쳐 평생 통증에 시달렸다. 1971년 달성공원이 문을 열 때부터 1998년까지 달성공원 수문장으로 근무하면서 ‘달성공원 마스코트’가 되었다. 1999년 지병인 당뇨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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