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임당동 고분군

2023. 5. 31. 04:52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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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압량읍 일대는 원삼국시대에 압독국(押督國)이라는 작은 나라가 지배했다. 초기 신라(사로국, 경주 일대) 파사이사금 23년(102)에 신라에 항복해 종속국이 되었다. 44년 뒤 일성이사금 13년(146) 때 신라에 반기를 들었다가 토벌당해 멸망했다.
신라는 압독국에 압독주를 설치해 백제와 전쟁에 군사적 거점으로 삼았다. 이후 경덕왕 때 장산군이라 하였다가 1310년 고려 충선왕 때 경산군(慶山郡)으로 고쳤다. 경산군은 1995년 지금의 경산시로 승격하였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병합 연대가 다소 차이 있으나 신라영토로 귀속되었음이 분명하다. 신라 김유신 장군은 압독주 군주(軍主, 군사 총사령관)를 하였고, 불교에 공헌한 원효는 압독국 출신이었다. 압독국이 있었던 압량 일대에는 지금도 대형고분들이 남아있다.

도시철도 영남대역에서 북쪽으로 800여m 걸어가니 압독국 지배계층의 무덤이었던 '임당동 고분군'이 나왔다. 입구에 한 그루 느티나무가 고분을 지키는 수문장인 듯 우뚝 서서 눈길을 끌었고, 주위에는 빌라와 주택들이 에워쌌다. 봉곳봉곳 솟은 10여 기의 고분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크기는 경주고분에 비할 바 아니지만 높이 3m 정도의 큰 무덤이 몰려있었다. 무덤 주위로 잔디밭이 꽤 넓었다. 유구하게 흐른 이천 년 세월에 무덤이 내려앉아 버린 것이 아닌지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고분군 끄트머리에 노후한 건물 한 채가 문이 잠겨있었다. 창을 들여다보니 무덤 속 모형과 발굴한 유물, 발굴 사진이 게시돼 있다. 안내판에는 무덤이 오랫동안 개간과 도굴로 훼손, 멸실되었고 1982년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출토된 유물은 금동관모,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 등 최고 지배자의 유물과 토기, 조개껍데기, 살구씨 등 수천 점에 이른다고 한다.
고분군에 접한 북쪽으로 기원후 4세기경 압독국에서 만든 둘레 950m 토성(임당 토성)이 1995년 발굴되었다. 토성에 올라서니 팔공산 주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져 한때 번성했을 고대국가의 영화를 짐작하게 만든다.

누군가 '죽기 위해 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태어나고 기업을 창립하는 것이 백 년을 지키기 어렵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표현을 강조한 것이겠지만, 역사가 말없이 증언하는 것 같아 돌아오는 발길이 숙연했다. (2023.5.27.)

지하철을 나와 맞은편 도로를 따라갔다. 당구공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입구의 주차된 차들은 주변 거주자의 것으로 보였다.
임당동 고분군 발굴 요약
임당 들 넘어 대구 앞산까지 전망이 수려하다.
잔디밭은 허투로 볼 터가 아닌 듯 느껴졌다.
고분은 마치 공동묘지처럼 가깝게 붙었다.
건물은 고분군 전시관이었다.
유리창을 통해 본 전시관 내부
고분에 접해 발굴된 토성
토성에서 바라본 팔공산 주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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