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담금주를 보고
2023. 4. 29. 11:26ㆍ일상다반사
728x90
치과 진료를 마치고 나왔다. 누군가 진열장 폐기물을 담벼락에 내어놓으면서 반쯤 남은 담금주 한 병까지 얹어 놓았다. 음주를 좋아하다 보니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송이버섯이었다. 병 모양도 특별하니 담글 때 정성을 쏟았겠다. 담은 지가 꽤 오래된 듯하고 병에 (39) 숫자가 붙어 있는 걸로 봐서 담금주를 좋아하는 이가 분명하다.
술이 변질하였을 리는 없을 테고, 왜 다 마시지 않고 내다 버렸을까? 마실 수 있는 술을 버리자니 아까워 누가 들고 가기라도 바란 것일까 아니면 속병을 앓아 술이 보기 싫어졌을까. 애주가로서 피(血) 같은 술이 버려진 것을 보고 괜히 참견하고 싶어진다.
써다가 버린 것이 어디 술뿐 아니다. 이 년 전 명퇴한 퇴직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알듯 한 분이었다. 자기 정체성을 증명하려면 괴로움을 극복해야 할 텐데 자살로 마무리한 짓은 남은 술을 함부로 버리는 행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은근히 술 생각이 난다. 치과 치료만 아니라면 오늘 술잔을 기울였을 텐데…. 내 기분을 아는지 서쪽 하늘이 술기운 오른 얼굴처럼 불콰하다. (2023.4.28.)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당암 다녀오다 (0) | 2023.05.03 |
---|---|
그림자 (0) | 2023.05.03 |
윤석열 대통령 미 의회 연설문 (0) | 2023.04.28 |
정화조 청소차를 보고 (0) | 2023.04.28 |
쌀밥 꽃이 흰 눈이 내린 듯 (0) | 2023.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