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조 청소차를 보고

2023. 4. 28. 07:02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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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긴 골목 한가운데 우리 집이 있었다. 좁은 골목에는 대개 좁은 집들이었다. 골목 따라 대문을 내 남향, 북향을 가릴 수 없는 집들이었고 담장이 다닥다닥 붙어 줄을 이었다. 담장이 끊기는 곳은 또 다른 샛골목이 나오며 이어졌다. 골목을 따라 집들이 들어섰는지, 담장을 따라 골목이 형성됐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리어카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좁고 긴 실골목에는 생활에 어려움이 따랐다. 먼저 수돗물이었다. 집집이 수도가 놓이지 않았을 때라 골목 어귀에 있는 공동 수돗가에서 매일 물을 받아야 했다. 꼭지가 하나밖에 없어 양동이 줄이 끊이지 않았다. 없는 것을 숙명이라 여기고 사는 동네라 불평불만은커녕 감지덕지했기에 물을 받으러 나온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동네 놈팡이가 살아 꿈틀거리는 뱀을 쥐고 나타나 물을 먼저 받아 가곤 했다.

또 하나는 재래식 화장실, 즉 푸세식 변소였다. 집이 좁은 만큼 변소 용량이 작았다. 한 달에 한 번쯤 정기적으로 오물을 퍼러 왔지만,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때를 늦추어 오면 희극인지 비극인지 그야말로 배설도 아껴야 했다. 똥차(오물을 퍼 가는 트럭)가 오면 똥 장수가 먼저 골목을 한 바퀴 누비면서 "변소 푸소" 소리치면 집집이 육이오 난리는 난리가 아니었다. 인부마다 퍼가는 수준이 달랐다. 깨끗하게 처리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이도 적지 않았다. 옆에 서서 퍼가는 횟수를 세면서 잔소리를 해대고 웃전을 쥐여줘야 했다. 똥지게는 어깨에 긴 막대기를 가로 대고 그 양쪽 끝에 똥통을 하나씩 달게 되어 있었다. 조심성 없는 녀석들은 골목에 질질 흘리곤 했다. 똥차가 다녀간 후 골목에는 물청소하느라 한바탕 시끌벅적했다.

며칠 전 출근하면서 정화조 청소차를 봤다. 요즘은 옛날의 똥차와 다르지만, 어떻게 청소하는지 정화조 차량조차 보기 드물다. 구린 냄새에 잊힌 과거가 되살아나 멀찍이 서서 한참 쳐다봤다. 내 머릿속엔 여전히 추억의 탯줄 같은 그 골목이 놓여있다. 없이 살아도 인정만은 긴 골목처럼 이어져 서로 부대끼며 살았던 그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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