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대정을 지나갈 때

2023. 4. 21. 08:35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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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 지내고, 지방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운 국립교육 기관이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생활을 할 때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읽은 제주ㅇㅇ에서 대정 향교의 푸른 소나무가 세한도의 모델이 되었다는 글이 떠올라 제주도에 간 김에 그 소나무를 보려고 찾아갔다.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비슷하게 생긴 두 그루는 2011년 기념식수를 한 표석이 박혀 있었고, 풍상설우를 겪었을 큰 소나무가 있었으나 세한도 모델과는 차이 나 보였다. 179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없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추사관이 있는 대정읍 안성리의 경로당에서 한 어르신에게 문의하니 "향교가 이곳(안성리)에서 현재 자리(사계리)로 옮겨 갔는데, 이사를 자주 해 옛 자취를 찾기 어렵다. 지금 그 소나무는 없다"라고 명쾌히 말씀해 주셨다.

추사 적거지* 입구의 추사관이 세한도 그림의 집과 비슷한 데다 짝을 이룬 소나무가 심겨 있었다. 추사관에 들어가면서 상상으로는 세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흔히 제주도를 물 위에 뜬 감옥이라고 한다. 광해군, 송시열, 김정희, 최익현 등 200여 명의 당대 거두들이 제주에서 유배살이했다. 추사 선생은 위리안치*의 형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배객보다 특별 대우를 받은 듯하다.  요즘 같으면 특혜라고 시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덕이 컸던 모양이다.

* 대정 향교(大靜鄕校):  조선 태종 16년(1416)에 세웠는데 여러 차례 옮기다가 효종 4년(1653)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영조 48년(1772)에는 명륜당을, 헌종 원년(1834)에는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장식이 검소하고 전체적으로 간결한 느낌을 준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 1971.8.26.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요약 발췌: 국가문화유산포털)
* 적거지(謫居地): 귀양살이하는 곳
*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대정 향교 입구 / 안덕면 사계리
대정 향교의 소나무 / 세한도 그림과 비슷하나 2011년 식수했다.
대정 향교의 소나무(왼쪽)와 퐁낭(오른쪽)
2014.10월 건립한 추사 적거지 입구의 김정희 동상 / 풍모가 삼국지의 위인 같아 보였다.
동상의 붓을 살짝 만져보았다.
추사 적거지는 부유한 강도순의 집 사랑채였다.
추사관, 분위기가 세한도 그림과 비슷하다.
국보의 정식 명칭은 김정희필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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