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멧돼지

2023. 1. 31. 10:49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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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전 삼십 년 전 헤어진 상사(上司) 정ㅇ윤 님의 전화를 받았다. 되게 반가웠다. 여든 서넛 나이에도 밝은 목소리가 예전 그대로였다. 열정이 많고 항상 유쾌하신 분이었다. 옛 추억을 잊지 못한다면서 건강하게 잘 지낸다고 안부를 전하셨다.

'라테'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청춘에서 멀어지면 당연히 찾아드는 현상이다. 나이는 먹을수록 시간 부자가 된다. 이때쯤이면 시나브로 지난 일을 돌이키며 회포를 느낀다. 옛 상사도 문득 '라테'를 회상하였을 것이다. 그분과 함께한 추억 중 잊지 못할 하나. 이른바 '까치와 멧돼지' 일화다.

산행 중 새그물에 걸린 새끼 까치를 구해 주었는데 그것이 왕자 까치였나보다. 덕분에 까치 왕으로부터 멧돼지를 선물 받고, 수많은 까치 떼의 배웅받은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그 일을 떠올리니 전율에 휩싸인다. 그때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까치와 멧돼지

1993년 봄, 선후배 아홉 명이 충북 영동 마니산에 들었다. 산행 들목인 산골 마을을 벗어나자 샛노란 야생화가 난만했다. 막 색칠해 놓은 수채화가 따로 없었다. 고랑의 물이 졸졸 흘러가고 걸음마다 봄이 밟혔다. 까만 그늘막을 덮어쓴 인삼밭도 풍요로워 보였다.

산행을 시작하자 허공을 가로지른 새그물이 눈에 띄었다. 뭔가 걸려있어 다가가니 어린 까치였다. 까치를 자주 보았지만 새끼는 처음이었다. 한 줌도 안 되는 미물의 영롱한 눈이 살려 달라 애원하는 것 같아 애처로웠다. 까치도 살리고 새그물도 망가트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다뤘지만, 깃털에 엉킨 실이 풀리지 않았다.

주머니칼을 꺼내 그물을 찢은 후 한 올 한 올 벗겨냈다. 그러는 동안 손안에 든 녀석이 바르르 떨었다. 전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감촉을 잊을 수 없다. 어수선한 깃털을 다듬어 두 손을 받쳐 내밀자 허공으로 황망히 사라졌다. 날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는 새그물에 걸리지 말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보냈다.

까치 일을 잊은 채 두어 시간 다리품을 팔았다. 오르내리는 산세가 지루했고, 따스한 봄볕에 온몸이 노곤했다. 일행은 자연스레 하나둘 일렬종대로 간격이 벌어졌다. 지쳐갈 무렵 한쪽이 벼랑인 된비알을 오르다 깜짝 놀랐다. 눈앞에 시커먼 멧돼지 한 마리가 우리들 째려보며 서 있는 게 아닌가. 금방 돌진해 올 것 같았다. 오금이 저렸다. 앞서 걷던 장*식 선배가 자일 두 동을 전광석화처럼 절벽 아래로 던졌다.

“멧돼지다. 도망쳐라.”
선두에서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 혼비백산해 모두 흩어지려는데 후미에 있던 정*윤 왕고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인마들이 도망은 어데 가노, 잡아라.”

우리는 월급쟁이들이었다. 끗발 센 왕고참의 외침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 일어난 돌발행동에 멧돼지가 오히려 놀랐는지 움찔움찔하더니 냅다 달아나기 시작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게 통했다. 우리는 목청을 더욱 돋우어 바짝 뒤를 따랐다. 쫓는 광경이 백병전을 방불케 했다.

달리던 멧돼지가 갑자기 멈췄다. 덩달아 우리도 얼음이 되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녀석이 조용했다. 가만히 보니 달아나다 밀렵꾼이 쳐놓은 올무에 걸렸다. 때를 놓칠세라 탄성 반 두려움 반으로 조심스레 접근했다. 멧돼지가 길길이 날뛰었다. 그럴수록 올무가 더욱 죄어졌다. 호기를 잡은 우리는 머리통만 한 돌덩이를 집어 들었다.

이윽고 멧돼지가 쓰러졌다. 거친 숨소리가 끊겼다. 잔혹한 공격에도 터럭 하나 빠지지 않은 몸체는 마치 평온하게 잠이 든 것 같았다. 죽었나, 살았나! 빤히 들여다보는데 벌떡 일어날 것 같아 두려웠다. 재빨리 보조자일로 멧돼지의 입과 앞, 뒷발을 꽁꽁 묶었다.

포박한 다리에 잡목을 끼워 두 사람이 둘러멨다. 거꾸로 매달린 사냥물을 두고 개선장군이 된 양 멋을 냈다. 왕고참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적당한 곳에 옮겨 잡아먹자.”

왕고참이 달걀만큼 커진 쓸개를 들고 살피는가 싶더니 갑자기 입에 쑥 넣었다. 쓸개가 한 입이나 되니 바로 터졌다. 구토를 참는 듯 두 손으로 입을 지그시 눌렀다. 우리는 손바닥 사이로 새어 나오는 노란 진액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동에는 인삼이 많이 난다. 인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자란 멧돼지 쓸개를 꿀꺽했다. 저담(猪膽)은 웅담(熊膽) 다음으로 널리 명약으로 친다. 왕고참은 팔뚝으로 입을 쓱 닦으며
“야, 너그들 피 굳기 전에 얼른 먹어라.”
하는 자상한 말씀에 지난가을 피었다 진 마른 갈대를 대롱 삼아 빨았다. 안 먹는 것보다 낫겠다는 마음에 갈대를 문 입술에 힘을 주었다. 쪽쪽거리는 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치는 듯했다.

가장 큰 배낭 하나에 개인장비를 몰아넣었다. 나머지에는 수렵물을 채웠다. 한 배낭에는 앞다리가 삐죽 튀어나왔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배고픈 호랑이가 털북숭이 손을 내민 것 같았다. 여덟 개 배낭은 멧돼지 한 마리를 집어넣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다리 한 짝은 양지바른 곳을 찾아서 마당구이를 했다. 모닥불을 피워 익힌 살코기에 소금만 뿌렸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산행을 단념하고 귀가를 서둘렀다. 버스를 타려고 능선을 가로질러 한적한 국도변에 다다랐다. 기다리는 동안 무덤가에 드러누워 벌어졌던 상황을 재연해 열을 올렸다. 그때였다. 새떼가 하늘을 까맣게 뒤덮었다. 까치였다. 수백 마리 무리가 드넓은 하늘을 놓아두고 우리들 머리 위에서 맴을 돌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뜻밖의 사건이 마치 어린 까치를 살려준 보은의 대가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아직도 그때만큼 대군을 이룬 까치 떼를 본 적이 없다. 버스가 도착해 우리가 승차하고 나서야 까치 떼가 마니산 쪽으로 사라졌다.


이제 와 후회막급이다. 그때는 젊은 혈기에 도취해 하나의 생명을 앗는 죄를 몰랐다. 귀중한 생명을 거두고 호기까지 부렸으니 아찔하다. 멧돼지의 목숨도 어린 까치의 목숨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는다. 어린 시절 흥부와 놀부는 권선징악을 교훈으로 남겼다. 나는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또 다른 교훈 하나를 눈치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