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0. 09:20ㆍ입맛

경주 문화 관광지 몇 곳을 둘러보고 불국사로 가는 길에 좌회전을 놓쳐 직전하고 말았다. 유턴하는 곳이 멀 것 같아 우회전했더니 폐쇄된 국철 불국사역이 나왔다. 주차한 후 폐역사를 둘러보려니 문이 잠겼다. 오후 세 시가 되도록 돌아다니느라 점심을 먹지 못했는데, 바로 앞에 국숫집이 눈에 띄었다. 선 김에 식당 <갈비랑 국수랑>으로 들어갔다.

아담한 홀은 깔끔하고 정겨운 시골집같이 풋풋해 보였다. 탁자에 올려놓은 메뉴판은 국수와 김밥, 사이드 메뉴로 고기 1접시와 왕만두뿐이어서 무얼 먹을지 망설임 없이 주문하기 좋았다. 잔치국수와 고기 1접시를 주문했다. 기다리면서 홀을 살펴보니 한쪽에 안내 사항이 붙었다. 수제 면이니 8분 정도 기다려 달라는 양해를 얻는 글이었다. 코너 벽에는 주낙영 시장 등 저명인사들이 왕림해 남기고 간 사인지와 기념사진이 과하지 않게 장식돼 있고, 반대 벽에는 인상적인 글귀가 캘리그라피로 이쁘게 적혀 있었다.
'내 인생의/ 봄날//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하는/ 지금이/ 내 생의// 봄날입니다.'
조그만 접시에 소복이 담긴 고기 1접시가 먼저 나왔다. 연탄불에 구운 양념 돼지고기였다. 고기가 식지 않도록 간이 촛불 박스에 올려준다. 탄내가 여리게 나 입맛을 돋웠다. 갈색 물이 든 고기를 보니 양념이 간장일 것 같다. 달짝지근하면서 쫄깃한 식감이 좋았다. 대구의 '북성로 연탄 불고기' 맛과 비슷했으나 감칠맛이 더 낫다. 접시를 비울 때쯤 잔치국수가 나왔다. 특이하게 꼬치 어묵이 하나 담겨 나왔다. 웬 떡이냐 싶었다. 잔치국수의 담백한 국물에 꼬치 어묵의 조합이라니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면발도 수제 면이어선지 훨씬 부드러웠다. 워낙 면을 좋아하고 식성도 남 못지않아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공복감이 포만감으로 바뀌었다. 여주인에게 "처음 왔는데 음식이 맛있었다"고 인사 하니, 깜짝 놀라며 하는 말이 "아니, 우리 집이 십오 년 됐는데 처음이라니요?"라면서 오히려 반문했다. 알고 보니 <갈비랑 국수랑>은 경주에서는 알려진 맛집이었다. 교통 신호를 놓쳐서 우연히 들리게 된 맛집을 통해 여행의 맛까지 톡톡히 높였다.
불국사역은 1918년 11월 1일 영업을 개시한 후 중앙선 이설로 2021년 12월 28일 폐역됐다. 현재 문이 굳게 닫힌 한옥형 역사는 1936년 일제강점기 때 지었다. (20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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