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를 하다 보니

2022. 10. 15. 04:54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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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잠이 깼다. 문득 성지순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례 축복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냉담자가 된 나로서는 뜬금없었다. 마음을 다지고 성지순례에 나섰다. 가끔 집사람이나 친구가 동반하였지만 대부분 혼자 다녔다. 신심이나 교리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그것이 마음 편했다. 순례지에서는 책자에 적힌 기도문만 읽었다. 솔직히 기도할 줄도 모르고, 시간에 쫓기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들은 신자인 지인 두 부부[鄭ㅇ, 閔ㅇㅇ]도 용기를 내어 성지순례를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순례를 독려한 셈이었다.

계룡시에 사는 친구 부부는 독실한 신자다. 대전교구의 성지를 다녀오면서 찾아갔다. 내 처지를 잘 아는 부부이기에 순례지에서 나름대로 지키는 사항과 그렇지 못하는 일을 고백했다. 친구 부인이 "걱정하지 마라. 성지를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하느님이 다 아신다."라며 위로해 주었다. 열등생이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듯 큰 힘이 되었다. 역시 독실한 신자인 다른 친구는 "(14처) 기도나 미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스탬프만 찍는 순례는 하지 마라"고 충고했다. 순교자에 바치는 기도문은 읽는다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입안에서 맴돌았다. 공허했다. 독실한 신자들도 자신들의 소신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랐다. 성지순례 완주의 마음을 더 굳히는 계기로 삼았다.

한글날 연휴에 집사람과 두 친구 부부들과 함께 순례하러 갔다. 나 빼고는 집사람을 포함해 모두 독실한 불교 신도다. 여름부터 함께 가려고 벼르다 이번에 동행했다. 친구들은 성지까지 차를 운전해 주고 기다렸다. 혼자 다닐 때보다 마음이 급했지만 이동할 때는 차 안에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계획한 순례를 마쳤는데도 계속하자는 으름장에 네 곳이나 더 갔다. 덕분에 14곳(누계 116/167)을 순례했다. 이번 여정은 7번 국도를 따라 순례하면서 즐겁게 관광*도 하였다. 모두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짬을 내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7번 국도를 따라가면서 올봄에 일어난 울진, 삼척과 동해, 강릉 산불 흔적을 보았다. 도롯가, 산등성, 동네 앞까지 새까맣게 남은 산불 잔재들이 그날의 두려웠던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방심이 일으킨 재난.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되겠다.

빗길에 930km 대장정을 안전 운전해 준 인산과 동반한 불도(佛徒)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대구에 비가 오지 않았던 이날은(10.10.) 축복이나 하듯 밤하늘 별빛이 유난히 형형했다.

* 장사 해변, 묵호 논골담길, 초당쫄면순두부(대기하다 포기), 강릉 바닷가 숙소 라카이샌드파인, 부산처녀횟집 회식, 테라로사 커피, 해변 일출 맞이, 선열 해장국 두부, 오죽헌, 용대리 황태 축제, 춘천 꼬꼬메이플가든 닭갈비와 막국수, 대구 송정 육회비빔밥

울산바위와 설악 전경 / 미시령 터널 가면서



성내동 성당; 진 야고보 신부님은 1950.7.4. 인민군에게 피살되었다.
묵호 성당; 라 파트리치오 신부님도 6.25 때 인민군에게 피살되었다.
순교자 라 파트리치오 신부님 순교터
금광리 공소는 강릉 지역의 천주교의 모태였다.
임당동 성당; 건물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 / 칠사당
행정 공소는 옹기 가마에 구운 벽돌로 지어졌다.
양양 성지;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는 1950.10.9. 인민군 총탄에 순교했다.
겟세마니 피정의 집; 58년의 한국의 삶을 사신 조선희 필립보 신부의 얼이 서렸다.
곰실 공소는 엄주언 마르티노가 세운 공동체로 춘천교구의 요람이다.
소양로 성당; 6.25 때 순교한 고 안토니오 신부를 기념한다.
죽림동 순교 성지 / 죽림동 주교좌 성당 뒤뜰
춘천교구 주교관과 교육원; 공휴일이어선지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다. / 주교관
홍천 성당; 1955.4월 준공된 성당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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