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6. 08:33ㆍ여행의 추억
불교도인 집사람이 경산 와촌 불굴사 가려기에 차를 운전했다. 천주교 냉담자인 나는 이쪽저쪽 경계에 들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다. 불굴사에는 집사람은 두 번째고 나는 처음이다. 갓바위 가는 팔공산 순환도로 어디쯤에서 반대쪽 오르막길을 굽이굽이 올라갔다. 차없는 옛날에 스님들은 어떻게 탁발하러 다녔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무학산 불굴사는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일꾼들이 분주했고, 불사가 산 중턱까지 이루어져 절터가 무척 넓었다. 신라 신문왕 10년(690년)에 창건했다고 전하는 사찰은 창건 전, 석굴에서 원효가 수도했다고 하며 김유신도 삼국통일 염원을 기도한 곳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번성했으나 영조 12년(1736년) 큰비로 산사태가 일어나 50여 동의 전각이 모두 파묻혀 폐허가 된 후 사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쇠퇴했다고 한다. 현전하는 삼층 석탑은 창건 당시 조성한 탑으로, 보물로 지정됐다. 주 법당인 적멸보궁은 불상 대신 법당 밖에 1988년 인도에서 모셔 와 봉안한 진신 사리탑에 배관한다. 이 외에도 암벽 석굴인 홍주암(원효굴)과 고려 시대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는 석조 입불상이 신자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팔공산 주변 경산 와촌에는 원효와 김유신의 설화를 품은 크고 작은 사찰이 많다. 원효(617~686)의 고향이 경산이고, 김유신(595~673)이 압독국(현재 경산) 도독을 지냈던 만큼 전해지는 설화가 많은 것이 당연하겠다. 불굴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원효가 창건한 윈효암이 있고, 팔공산 자락 청운대 근처 절벽의 서당굴은 원효가 수도했다고 하며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염원한 기도처로도 알려져 있다. 불굴사 홍주암(원효굴)도 똑같은 설화가 깃들어 있으니, 후대에 들어와 스토리텔링 한 부분이 없지 않을 것 같다. 집사람은 부처님 전에 불공을 올리고, 원효 대사에게도 성심껏 기도했다. 그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다가 원효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한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2024.10.1.)
* 아웃사이더: 외부인으로서 주류 집단의 일원이 아니거나 굳이 소속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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