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솔숲의 하트와 브이

2024. 2. 29. 17:45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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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벗어나자, 솔숲이 펼쳐졌다. 솔 내음이 싱그럽고 솔바람도 청량하다. 울창한 솔숲 한가운데로 산책로가 아늑하게 이어졌다. 누군가 떨어진 솔가리를 긁어모아 '하트(♡)'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마음씨가 따뜻한 분이리라. 녹음을 머금은 울창한 소나무는 키가 컸다. 검붉은 색깔의 껍질은 장수(將帥)의 철갑을 입은 듯하고 몸통에는 가지나 잎이 없거나 적고, 꼭대기 부근에 우산처럼 가지를 뻗어 바늘 같은 잎을 피웠다. 수려한 자태에 늠름한 기상이 서렸다. 그런데도 밑동에 '브이(V)' 형태의 홈이 거칠게 파인 나무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때 전쟁 물자를 보충하려고 조선총독부가 송진 기름을 채취한 흔적이다. 1943년 한해에만 전국에서 송진을 사천 톤 채취했다. 재생하지 않는 흉한 상처를 안고도 고사하지 않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서 있는, 말 없는 소나무에서 역경을 극복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어떤 사람은 상처를 내고 또 어떤 이는 사랑을 만들기도 한다. 산책길을 벗어나며 소나무의 기개를 찬탄한 윤선도의 시조 한 수가 떠올랐다.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땅속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하여 아노라. (윤선도의 '오우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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