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읍성을 둘러보며

2023. 11. 8. 06:45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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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버스로 청도를 갔다. 청도(淸道) 지역은 동서로 길게 뻗은 면적이 서울보다 1.2배 정도 넓다. 전통 소싸움의 고장이며 화랑정신과 새마을운동 발상지로 이름이 났고, 씨 없는 감의 유명세는 숱한 이야깃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청도의 청은 맑을 '淸'으로 공기와 물, 군민의 마음이 맑은 삼 청의 고장으로 불린다.

버스가 읍성(邑城)에 도착했다. 가까이 있는 석빙고로 먼저 갔다. 석빙고는 삼백여 년 전 만든 대형 냉동고다. 겨울 강에서 떠 온 얼음을 재워 여름까지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일곱 개 석빙고는 모두 조선시대 만들어졌다. 남한의 여섯 곳은 보물로, 황해도 해주는 북한에서 국보로 지정했다. 모두 봉분이 덮인 데 반해 청도의 것은 봉토가 유실되어 아치 구조물과 널따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선조들의 과학적 우수성을 보여주는 정교한 구조에 놀라웠고, 석재를 나르는데 승려까지 동원했다는데 또 한 번 놀랐다. 조선의 억불 정책의 표본 같다. 매년 빙고를 여닫는 장빙제를 지냈다. 이때 얼음 맛을 지방 수령과 지역 어르신네 중 누가 먼저 맛보느냐에 따라 백성들이 선정의 척도로 삼았다는 기록은 현재에도 음미해 볼 대목이다. 빙고의 얼음이 진상품을 보전하는 데 이용되었다면 지금의 냉장고는 나와 가족을 위한 것이니만큼 범부의 생활이 임금님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읍성은 고려 때 흙과 자갈을 섞어 쌓았다.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쯤 되었다. 조선 선조 23년(1590)에 왜란을 대비해 돌로 다시 축성했다. 높이 1.7m, 길이 1,880m에 이르렀으나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때 도로 건설을 위한 철거 정책으로 대부분 헐려 지금은 성벽의 일부가 남았다. 북문 공북루 앞에 옹성(甕城)이 있다. 성문을 보호하려고 성문 밖에 원형으로 다시 쌓은 성벽인데 옹기처럼 생겨서 옹성이다. 처음 보는 형태로 기발한 아이디어 산물 같았다. 옹성에서 동쪽으로 십여 미터 위치의 치성(雉城,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은 일몰 포토존이다. 해가 중천에 있어 일몰을 기다릴 수 없었다. 읍성 끝부분에 고마청(雇馬廳)을 복원했다. 자기 조각으로 만든 달리는 말 모형도 서 있었다. 고마청은 민간의 말을 삯을 주고 징발하는 관아였다. 요즘의 렌터카 서비스업의 시초인 셈이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객사[道州館]가 있었으므로 고마청의 복원이 생뚱맞지는 않아 보였다.

읍성 서쪽의 도주관은 조선시대 공무용 객사다.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걸어두고 지방 수령이 한 달에 두 번 배례했다. 동시에 사신이나 중앙관리의 지방 출장 때 접대하거나 유숙하는 곳이었다. 이것 역시 일제강점기 때 도로를 내면서 왼쪽 객사 건물이 헐려 2006년 복원했다. 복원 당시 교체한 서까래에서 전국의 승려 목수가 동원된 기록이 나왔다. 헌 서까래를 객사 마루에 보관하고 있으나 그대로 계속 두면 글씨가 자연 훼손, 마모돼 사라질 것 같다. 도주관 앞에 대원군의 척화비가 옮겨져 있었다. 척화비를 볼 때마다 '쇄국'이란 단어가 떠올라 아쉬운 마음이 든다. 역사의 시계는 되돌릴 수 없지만, 쇄국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현재 어떤 위치에 있을지 궁금증이 나래를 편다. 도주는 청도의 옛 지명이다.

읍성 도로변 한 곁에 지방 수령들의 선정비군(善政碑群)이 있다. 군내 흩어져 있던 비석을 한곳에 모았다. 강압으로 세워진 선정비는 후일에 백성들이 훼손했다. 파손된 비석과 땅에 떨어진 비석 머리가 아직 뒹굴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범부는 가슴이 서늘한데, 위정자들은 어떤 심경일까. 부서진 선정비가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 (2023.11.4.)

석빙고는 봉토가 유실되어 공룡의 갈비뼈처럼 골격이 드러났다. 남한에서 가장 오래 됐다.
복원된 읍성. 멀리는 남산.
도주관. 왼쪽, 오른쪽 지붕이 다르다. 도로 때문이다.
서까래에 건립 당시 공사한 대목승과 목수승의 법명이 적혀있다. 억불 정책의 흔적은 곳곳에 나타난다.
읍성 북문인 공북루와 옹성
복원한 고마청
군내에 있는 선정비 30기를 한곳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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