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전(2)

2023. 8. 10. 13:05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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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깨진 달걀)

1665~70년경, 캔버스에 유화, 43.3 × 38.1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941년 오토 베이트 유증
얀 스테인, 1726~1679

 
얀 스테인은 고향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여관을 운영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술자리 모임에 풍자를 담아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주었으므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술에 취해 여관 주인의 치마를 붙들고 있는 남성은 얀 스테인입니다.
 
그림 속에는 성적 암시들이 반복됩니다. 빨간 모자를 쓴 남성은 담배를 다져 넣으려 파이프에 손가락을 집어넣었으며, 그 옆 남성은 여관 주인에게 은근한 시선을 던집니다. 바닥에는 정력재로 유명한 홍합 껍데기와 잃어버린 순결을 상징하는 깨진 달걀이 흩어져 있으며, 열린 와인 통과 막대기, 프라이팬 손잡이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배경에서는 한 소년이 몰래 그릇에 손가락을 넣고 있습니다. 얀 스테인은 어린이가 어른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을 자주 그림의 주제로 활용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신앙심 깊은 중산층 가정의 벽에 걸려 교훈을 핑계로 즐거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안뜰에서의 음악 모임

1677년, 캔버스에 유화, 83.5 × 68.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16년 구입
피터르 더 호흐, 1629~1984

 
피터르 더 호흐는 중산층 여성과 아이들의 가정생활을 그림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후기에는 이 그림처럼 암스테르담의 상류층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안뜰에 있는 데이블을 덮은 터키산 카펫과 데이블 위의 이국적인 과일 오렌지는 그림 속 인물들의 재력을 보여줍니다. 세련된 차림의 여성이 들고 있는 잔과 은제 젓개가 섬세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다른 여성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이 시기 미술에서 음악 연주는 성적 관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치문에 선 남성은 건너편 운하 옆길을 바라봅니다. 그늘진 안뜰 풍경 대신 밝은 바깥 배경에 시선이 모아집니다.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

1805년 이전, 캔버스에 유화, 82 × 54.6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96년 구입
프란시스코 데 고야, 1746~1828

 
고야는 스페인의 대표 화가이자 판화가로 카를로스 3세, 카를로스 4세, 페르디난드 7세의 궁정화가로 일했습니다. 그림 속 여성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국무장관이던 돈 안토니오 데 포르셀의 아내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1780년경~1842)입니다.
 
그녀가 입은 옷은 전통적으로 낮은 계급 여성인 마하(maja)의 복식이지만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스페인의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화려한 검은 레이스 숄을 둘렀으며 머리에는 검은 레이스의 만틸라(mantilla)를 썼습니다. 만틸라를 고정한 빗에는 검은 리본으로 만든 꽃이 달려 있습니다. 이 작품은 내셔널갤러리가 발간한 『명화 100선(1994)』의 표지 작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고야의 대표작으로 여겨졌습니다.
 
화가들은 이미 사용한 캔버스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도 캔버스를 다시 사용해 그린 그립입니다. 이 캔버스에는 원래 남자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X선 촬영으로 분석해 보니 남성 초상화를 그린 후 바니시*를 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았었습니다. 아마도 남자 초상화를 완성하지 않고 그 위에 새로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을 그렸을 겁니다.
 
* 바니시: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겉에 바르는 미술 재료로 그림을 완성한 후에 바른다.
주) 이 시대에는 물자가 부족하여 사용하던 캔버스를 많이 재활용했다.
 
 
 
 

기사를 맞이하는 여인

1745~55, 캔버스에 유화, 61.5 × 50.7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948년 아서 제임스 컬렉션에서 메리 베네치아 제임스 유증
피에트로 롱기, 1701~1785

 
피에트로 롱기는 18세기 베네치아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에 풍자를 담은 작은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흰색 파우더를 뿌린 머리 또는 가발, 화려한 에이스와 넓게 퍼지는 옷소매 등 유행에 따라 차려입은 여인이 신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두 하녀는 수를 놓는데 집중하는 반면, 여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하녀들의 성실하고 정숙한 모습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상류층의 비도덕적 행동을 풍자하는 그림은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습니다.
 
 
 

여인 (마담 드 글레옹 추정)

1760년경, 캔버스에 유화, 64.1 × 54.6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45년 에밀리 이스나가 기증
장 바티스트 그뢰즈, 1725~1805

 
프랑스에서 유행한 로코코 시대 패션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문필가이자 아마추어 배우였던 드 글레옹 후작 부인으로 추정됩니다.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유행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머리와 옷 스타일이 눈길을 끕니다. 가르마 없이 빗어 넘겨 줄지어 땋은 곱슬머리가 특징인 ‘테트 드 무통(tête de mouton, 염소 머리)’ 스타일을 했습니다. 머리에 흰색 파우더를 뿌리고 진주와 비단으로 만든 파란색 꽃 장식을 달았는데, 이러한 머리 장식들은 그것들을 유행시킨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이름을 따서 ‘폼폼(pompom)’이라고 했습니다. 넓은 네모난 목 라인과 컷워크 레이스로 만든 섬세하고 화려한 소매가 돋보입니다.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

1638년경, 캔버스에 유화, 237.5 × 146.1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88년 구입
안토니 반 다이크, 1599~1641

 
그림 속 소년들은 영국 귀족인 3대 레녹스 공작의 아들들로, 왼쪽이 형인 존 스튜어트, 오른쪽이 동생 버나드 스튜어트입니다. 당시 18세, 17세에 불과했지만, 귀족적인 거만함이 느껴집니다. 두 사람의 자세와 호화로운 옷은 이들의 부유함과 높은 신분이 돋보이도록 계산된 것입니다.
 
반 다이크는 스승 루벤스와 함께 17세기 북유럽 플랑드르를 대표하는 화가로, 이후 영국에서 찰스 1세와 왕실 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화가, 특히 16세기 티치아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고급 옷감의 반짝임과 감촉을 아름답게 표현하여 인기가 높았습니다.
 
이 그림은 스튜어트 형제가 유럽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졌을 것입니다. 스튜어트 형제는 1639년 1월 30일, 영국 돈 100파운드와 하인 6명을 데리고 3년 동안 해외 여행을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3년 후, 1642 년에 영국에서 국왕 찰스 1세와 의회가 서로 심하게 다투어 전쟁(청교도 혁명)이 일어납니다. 스튜어트 형제의 집안은 국왕의 친척이었기 때문에 국왕 편으로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형과 동생은 전쟁 중 1644년과 1645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 두 사람의 나이는 겨우 24살이었습니다.
 
 
 

존 스콧 (추정)

1774년, 캔버스에 유화, 101.3 × 74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950년 남편인 C.E.코렐라인 대령을 추모하여 E.M.E. 코렐라인 유증
폼페오 지롤라모 바토니, 1708~1787

 
바토니는 18세기 로마에서 활동한 초상화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념사진을 찍듯 그랜드 투어 중인 영국인들은 그에게 초상화를 주문했습니다.
 
그림 속 인물은 1770년대 로마를 여행했던 영국인 존 스콧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흰색 파우더를 뿌린 머리 또는 가발을 리본으로 묶었으며 이탈리아에서 샀을 것으로 보이는 비단 겉옷을 입고 있습니다. 고대 조각을 연상시키는 석고 대좌에는 그림을 그린 연도인 ‘1774’라는 숫자와 바토니의 서명을 마치 새긴 것처럼 그렸습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이 정면이 아닌 왼쪽 아래를 바라보고 있어 영국 저택의 벽난로 뒤에 높이 걸었다면 방 전체를 위엄 있게 내려다 보는 효과를 주었을 것입니다.
 
 
 

어부들이 있는 강

1751년, 캔버스에 유화, 59.1 × 74.3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879년 존 헨더슨 유증
클로드 조제프 베르네, 1714~1789

 
베르네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풍경 화가로 18세기 전반 로마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17세기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과 푸생의 전통을 잇는 이탈리아 풍경화로 유명했는데, 당시 그랜드 투어 중이던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로마의 판데온을 연상시키는 강건너의 고전적인 건물은 그의 다른 작품에도 나타나는데 여러 요소를 조합하여 상상의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베르네 작품의 특징입니다. 카날레토의 작품과 달리 특정한 장소를 그린 것은 아니지만, 이상화된 이탈리아 교외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베네치아 카스텔로의 산 피에트로

1730년대, 캔버스에 유화, 47.3 × 79.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79년 존 헨더슨 유증
카날레토 (조반니 안토니오 카날), 1697~1768

 
베네치아 동부 카스텔로의 작은 섬 산 피에트로는 당시 상인이나 노동자들이 살던 조용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림 가운데에 있는 산 피에트로 성당은 1807년까지 베네치아의 대성당이었습니다. 고전적인 르네상스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1580)의 설계를 바탕으로 16세기 후반 수리된 이 건물은 18세기 그랜드 투어를 하는 영국인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이들은 영국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시골 저택을 팔라디오 양식으로 수리했습니다. 팔라디오 양식의 우아한 파사드가 있는 성당을 그린 이 그림은 전경에 베네치아 일반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해 여행 기념품으로도 매우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베네치아 카나레조 입구

1734-42년경, 캔버스에 유화, 48 × 80.2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879년 존 헨더슨 유증
카날레토 (조반니 안토니오 카날), 1697~1768.

 
카날레토는 베네치아 모습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린 풍경화로 유명했습니다. 그랜드 투어가 유행한 시기, 이탈리아에 온 영국인들은 오늘날 여행 기념품으로 그림엽서를 사듯 그의 풍경화를 구입했습니다. 그림 속 장소는 지금도 인기 있는 관광지입니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 카나레조 운하의 입구를 그린 것으로, 인기가 좋아서 카날레토와 그의 공방에서 반복해서 제작했습니다. 차가운 저녁의 빛과 옅은 분홍색 구름이 있는 하늘은 1740년대 전반 그려진 카날레토의 그림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로버트 퍼거슨과 로널드 퍼거슨 (활 쏘는 사람들)

1789~90년경, 캔버스에 유화, 110.5 × 123.6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2001년 상속세 대신 물납.
헨리 레이번, 1756~1823

 
그림 속 10대 형제는 당시 세련된 취미활동으로 유행한 활쏘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린 몇 년 후인 1792년과 1801년, 각각 왕실 궁수부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형제는 고대 조각을 연상시키는 구도로 그려졌는데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계몽주의가 전파되면서 고전주의와 고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형 로버트는 밝은 빛을 받아 뚜렷하고 멋진 옆모습을 보여주나 동생 로널드는 그림자 속에서 형이 당기는 활 사이로 우리를 바라봅니다.
 
헨리 레이번은 스코틀랜드에서만 활동한 초상작가로 이 그림은 그의 명성을 확고하게 해준 대표 작품입니다.
 
 
 

의사 랄프 숌버그

1770년경, 캔버스에 유화, 233 × 153.5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862년 구입
토머스 게인즈버러, 1727~1788

 
 
게인즈버러는 라이벌인 조슈아 레이놀즈(1723~1792)와 함께 18세기 후반 영국을 대표하는 초상화가입니다. 당시 유행한 옷차림에 자연스러운 자세를 한 인물들을 풍부한 색감과 가벼운 붓 터치로 그렸습니다.
 
고향인 영국 남동부 소도시에서 활동하던 그는 1759년 휴양도시 바스로 이주했으며, 이곳에 휴양 온 영국 상류층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작품은 바스에서 자신의 가족을 진료해 주던 의사 랄프 숌버그를 그린 그림입니다. 낭만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파우더를 뿌린 가발을 쓰고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기도대 앞에 무릎 꿇은 소녀

1813년, 목판에 유화, 34 × 25.5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2014년 마르시아 레이가 남긴 유산의 도움으로 구입
데이비드 윌키, 1785~1841

 
초상화 속 소녀는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1대 멀그레이브 백작의 딸 오거스타 팝스의 열두 살 때 모습으로 추정됩니다. 초성화가 그려진 1813년 오거스타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죽은 달을 추모하려고 주문한 그림일 것입니다. 풍부한 색채감, 소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의 빨간 벨벳과 흰 소매, 칼라의 부드러운 붓 터치는 네덜란드 옛 거장들의 그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스코틀랜드 화가 윌키는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1823년 헨리 레이번이 죽은 후에는 그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에서의 초상화가가 되었습니다.
 
 
 

찰스 윌리엄 램튼 (레드 보이)

1825년, 캔버스에 유화, 140.5 × 110.6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내셔널갤러리 미국 후원회, 길리언 클리버, 울프슨재단 기부금 포함 예술기금, 알 타니 재단, 매니&브리기타 데이비슨 자선재단, 윌리엄 샤프, 예술애호자선신탁협회 후원으로 2021년 구입
토머스 로렌스, 1769~1830

 
토머스 로렌스는 17세기 반 다이크, 18세기 게인즈버러와 레이놀즈의 뒤를 잇는 영국 대표 초상화가로, 특히 어린이를 그린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은 1967년 영국 우표에 실린 최초의 그림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는데, 1대 더럼 백작이 자신의 아들이 예닐곱 살일 때 주문 제작한 것입니다. 소년은 1831년, 열세 살 나이에 결핵으로 죽고 말았기에 이 그림은 그를 기억하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루소(1712~1778)의 주장처럼 아동기를 특별한 시간으로 여기기 시작한 당시 관점과 자연의 숭고함에 대한 낭만주의적 관심을 담고 있습니다. 로렌스는 놀 자유가 있는 어린이가 최고의 스승인 자연의 가르침을 받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도금된 액자는 처음부터 그림과 함께 제작되었는데 로렌스가 직접 액자 제작가 조지 모란트(1770~1846)에게 주문한 것입니다.
 
 
 

머큐리와 거짓말쟁이 나무꾼이 있는 풍경

1663년경, 캔버스에 유화, 125.7 × 202.1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37년경 구입
살바토르 로사, 1615~1673

 
고대 그리스에 전해지는 교훈적 이야기들을 모은 『이솝 우화』 중 머큐리와 나무꾼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는 금도끼와 은도끼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장면은 머큐리가 금도끼를 들고 강에서 나오자 거짓말쟁이 나무꾼이 금도끼를 받으러 달려가는 순간을 그린 것입니다.
 
화가는 이야기의 전달보다 빠른 붓질과 풍부한 색감으로 담아낸 장엄한 풍경의 표현에 더욱 초점을 맞췄습니다. 마법을 그린 그림이나 격정적인 풍경화로 알려진 17세기 화가 로사의 그림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자연의 숭고함을 그린 낭만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그림은 로마에서 풍경화를 모았던 로렌초 오노프리오 콜론나(1637~1689)가 살바도르 로사에게 그려 달라고 요청한 그림입니다. 콜론나는 클로드 로랭과 푸생의 그림에 이어 로사의 그림도 꼭 갖고 싶어 했습니다. 콜론나는 로사의 작품을 갖기 위해 로사에게 백지 수표를 보내 그림의 가격을 직접 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트랫퍼드의 종이 공장

1820년, 캔버스에 유화, 127 × 182.9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87년 상속세 대신 물납
존 컨스터블, 1776~1837

 
컨스터블은 자신이 태어나고 활동했던 서포크 지역의 일상 풍경을 많이 그렸습니다. 스트랫퍼드 공장은 스트랫퍼드 외곽 스투어강 섬 위에 지어진 수력을 이용하는 종이 공장입니다. 그는 야외 스케치를 대형 캔버스에 옮겨 그렸는데, 때로는 스케치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유화로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컨스터블이 1819~1825년 영국 왕립아카데미에 전시한, 너비가 6피트여서 ‘6피트 그림’으로 불린 대형 풍경화 6점 중 두 번째 그림입니다.
 
자연을 깊이 관찰하여 그린 그의 작품은 자연과 교감을 중요하게 여긴 프랑스 바르비종 화파나 낭만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빛에 대한 관심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별

1837년 이전, 캔버스에 유화, 146 × 236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56년 터너 유증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1775~1851

 
그리스 신화의 헤로와 레안드로스 이야기를 그린 그림입니다. 비너스의 사제인 헤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헬레스폰트 해협의 도시 세스토스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해협 동쪽에 사는 레안드로스와 사랑에 빠졌고, 매일 밤 그녀를 보려고 바다를 헤엄치는 그를 위해 등불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바람에 등불이 꺼져 레안드로스가 바다에서 죽자 헤로 역시 죽음을 택합니다.
 
화면 중앙 테라스에는 날개 달린 큐피드가 등불과 횃불을 들고 있으며, 결혼의 신 히멘이 그 옆에 서 있습니다. 테라스 아래 바닷가 어둠 속에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헤로와 레안드로스가 보입니다. 터너는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에서 보이는 균형 있는 고전적 구도, 표현적 색채 그리고 대기의 효과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성聖 우르술라의 출항

1641년, 캔버스에 유화, 112.9 × 149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24년 구입
클로드 로랭, 1600~1682

 
성인聖人들의 일생 이야기를 엮은 13세기 책 『황금 전설』에 나온 성 우르술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우르술라는 브리튼의 공주로 처녀 11,000명과 함께 로마로 순례를 떠나는데 이후 독일 퀼른에서 이곳을 침략한 유목민족인 훈족의 우두머리와 결혼하기를 거부하다 죽임을 당합니다.
 
클로드 로랭은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풍경화로 유명하며 터너를 비롯한 18~19세기 영국 풍경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귀족들의 시골 저택 정원을 클로드의 그림 속 풍경과 비슷하게 꾸미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작업실의 난로

1865년경, 캔버스에 유화, 41 × 30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992년 헬렌 체스터 비티의 유족이 상속세 대신 물납
폴 세잔, 1839~1906

 
세잔의 초기작으로 스튜디오의 물건들을 대충 그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세심하게 배치했습니다. 난로 뒤에 캔버스를 놓아 난로가 돋보이고, 난로의 검은 연통은 그림의 화면을 좌우로 나눕니다. 화면 왼쪽의 난로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화면 오른쪽의 테이블은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전체 색채가 어두운 것은 세잔 초기 그림의 특징입니다.
 
세잔은 후기 작품에서 사물의 형태와 색을 단순화해 질서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어 19세기 말 인상주의와 20세기 초 입체주의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기울어진 나무

1860~65년경, 캔버스에 유ㅘ, 49.7 × 60.7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10년 슐팅 유증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1796~1875

 
코로는 호수와 기울어진 자작나무가 있는 이와 유사한 풍경을 여러 점 그렸습니다. 주황색 붓칠 한 번으로 표현한 여성의 모자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물들을 단 몇 번의 붓칠로 간략하게 그렸습니다. 화면은 아주 작은 붓 터치들로 채워져 반짝이는 듯한 효과를 주지만, 가가이에서 보면 형태가 흐릿하게 사라지는 듯 합니다.
 
코로는 야외에서 풍경을 직접 스케치한 뒤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풍경화는 19세기 풍경화가들, 특히 인상주의자들이 빛을 표현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와인잔

1875년경, 캔버스에 유화, 45 × 37.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2018년 정부에 상속세 대신 물납, 내셔널갤러리에 소장.
존 싱어 사전트, 1856~1925

 
사전트가 겨우 열아홉 살 때 그린 그림입니다. 캔버스에는 1874년이라고 쓰여 있지만 아마도 사전트가 브르티뉴의 생테노가에서 여름을 보낸 1875년에 그린 작품일 것입니다. 사전트의 부모는 미국인이지만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다양한 재질 위에 덜어지는 빛의 효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햇빛이 바닥을 부분적으로 비추는 모습이나 테이블보에 주변의 빛과 색이 반사되어 얼룩덜룩 그림자가 생기는 모습 등을 묘사하였습니다. 빛의 효과에 대한 관심과 물감을 잔득 묻힌 뒤 캔버스에 바로 칠하는 유려한 붓칠 방식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목욕하는 사람

1885~90년경, 캔버스에 유화, 39.4 × 29.2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61년 안토니 혼비 부부 기증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41~1919

 
고대 그리스 신화의 디아나와 악테온, 성경의 수잔나와 장로들 등 누군가 지켜보는 줄 모르는 누드의 여성을 그리는 것은 과거부터 이어진 주제이지만, 르누아르는 동시대의 평범한 여성 누드를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르누아르는 1881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본 고대 로마의 조각상과 르네상스 회화에서 영감을 얻어 고전적 전통을 따르는 누드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붓 터치와 보색으로 대상의 빛과 움직임을 표현하였으며, 붓으로 번진 듯한 느낌을 표현해서 그림 속 여성과 그 주변 풍경을 더 감각적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카페 콩세르의 한 구석

1878~80년경, 캔버스에 유화, 97.1 × 77.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04년 코롤드 기금으로 구입
에두아르 마네, 1832~1883

 
대상을 직접 보고 그리기를 좋아한 마네는 근대적인 삶의 모습을 주제로 택했으며 물감을 자유롭게 사용했습니다. 이런 모습에서 오늘날 인상주의 선구자로 여겨지지만, 정작 마네 자신은 인상주의 전시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평생 살롱전에서 인정 받기를 원했습니다.
 
마네는 잔을 여러 개 들고도 맥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서빙하는 종업원들의 솜씨에 감탄해서 그중 가장 뛰어난 종업원에게 작업실에 와서 모델이 되어달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보호자도 함께 가서 돈을 받는 조건으로 마네의 제안을 수락했는데, 그림 속 파란 셔츠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남성이 그녀의 보호자입니다.
 
 
 

창문 앞 과일 그릇과 맥주잔

1890년경, 캔버스에 유화, 50.8 × 61.6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2006년 사이먼 세인스버리 유증
폴 고갱, 1848~1903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고갱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색의 순간을 포착하는 인상주의를 넘어 보다 영속성 있는 접근법을 찾는 과정에서 세잔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1880년경 고갱은 세잔의 그림 6점을 구입했는데, 그 중 〈과일 접시, 유리잔, 사과가 있는 정물(1879-80년)>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전시된 고갱의 작품은 고갱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최고의 보석'이라고까지 말한 세잔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과일, 비스듬히 놓인 칼, 구겨진 테이블보 등 세잔의 정물화 속 소재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 시기 고갱이 사용하기 시작한 사인 P Go.가 왼쪽 아래에 거꾸로 쓰여 있습니다.
 
 


네덜란드에 살던 반 고흐는 프랑스 파리로 온 1886년에 고갱을 만났습니다. 반 고흐가 1888년 프랑스의 아를로 이사한 뒤에 둘은 두 달을 함께 지냈지만, 반 고흐가 말 싸움 중에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고갱은 아를을 떠나고 맙니다. 반 고흐는 아를에서 해바라기 연작 등 대표 작품들을 그렸지만 정신병이 악화되어 1889년 병원에 입원했고, 다음 해 37세의 나이로 자살하고 맙니다.


이번에 전시하는 반 고흐와 고갱의 작품은 둘다 1890년에 그려졌습니다. 반 고흐는 이 해에 생 레미 근처 정신병원의 버려진 정원을 그렸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갱은 브르타뉴에서 세잔에 대한 존경을 담아 이 그림을 그린 후 타히티로 떠났습니다.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

1890년, 캔버스에 유화, 64.5 × 80.7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926년 코톨드 기금으로 구입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반 고흐는 오늘날 인기 있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이지만 살아있을 때는 그림을 거의 팔지 못했고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정신병이 악화되어 남부 프랑스의 생 레미 마을 근처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그림입니다. 그는 죽기 얼마 전인 1890년 5월 4일경, 동생 테오에게 ‘그림이 잘 그려진. 새롭게 자른 잔디 모습을 두 작품이나 그렸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이 그림이 여기서 말한 두 작품 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반 고흐는 진디와 잡초 위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담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감정을 담은 표현적인 밝은 색채와 유화물감을 겹쳐 두껍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이 특징입니다.
 
 
 

붓꽃

1914~17년경, 캔버스에 유화, 200.7 × 149.9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67년 구입
클로드 모네, 1840~1926

 
모네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대표 풍경화가입니다. 이 작품은 모네가 1914년에서 1917년 사이에 그린 붓꽃 연작 20점 중 하나로 지베르니에 있는 그의 정원을 그린 것입니다.
 
붓꽃은 모네가 가장 좋아한 꽃이었습니다. 붓꽃 연작은 대부분 높이 2미터의 대형 작품으로, 매우 독특하고 새로운 시점을 보여줍니다. 모네는 두껍고 대담한 붓으로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물감을 칠했고 캔버스의 흰 바탕이 드러난 채로 내버려 두기도 했습니다. 이는 당시 모네가 백내장으로 시력이 온전하지 못했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모네가 사망했을 때도 작업실에 있었으므로 모네가 작품을 완성했는지 아니면 미완성으로 남겨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풍경은 하루 만에 당신에게 스며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연못의 선경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팔레트를 잡았다. 아마도 나는 꽃 덕분에 화가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클로드 모네]

 
 
 
 

|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소감

작품 해설을 오디오로 듣고, 설명문을 읽고 감상했어도 눈맛이 앞섰다. 관람객들도 크고 화려한 그림 앞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그림 속에는 신화, 성경, 역사, 사회상과 개인적인 사연 등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았다. 화가의 천재성 없이는 명작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액자도 놓치지 않고 살펴봐야 할 볼거리였다.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예술 작품이었다. 그리고 2차대전 당시 처칠 수상이 예술품들을 독일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폐광산에 숨기는 동영상을 보면서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한 그들의 과거가 떠올라 아이러니했다.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유럽의 거장들이 그린 진품 명화을 직접 보아 실로 기뻤다. 내셔널갤러리와 국립 중앙박물관 측에 감사드린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전(1)

| 전시회 기본 정보 전시명: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전시기간: 2023.6.2.(금)~10.9.(월) - 9.29.(추석) 휴관 전시품: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 52점 입장료: 성인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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