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0. 05:23ㆍ여행의 추억
| 전시회 기본 정보
전시명: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전시기간: 2023.6.2.(금)~10.9.(월) - 9.29.(추석) 휴관
전시품: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 52점
입장료: 성인 18,000원(경로 50% 할인), 청소년 15,000원 등
-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료일) 50% 할인
| 관람 안내
큐레이터, 도슨트 운영하지 않음. 오디오 가이드(27개 작품) 이용(3,000원) 및 사진 촬영 가능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수집해 온 유럽 화화를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회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보티첼리에서 반 고흐까지 50명의 거장이 그린 명화 52점 전시.
오디오 가이드는 27개 작품만 가이드 받을 수 있다. 볼륨을 크게 하면 주위 사람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 모든 작품 아래에 자세한 해설문이 붙어 있다. 전시 공간은 4개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관람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 전시 작품 사진과 설명
작품에 붙어 있는 해설문을 그대로 옮겼다. 오디오 가이드에 상세한 설명이 나왔으나 모두 기억할 수 없어 기록 생략.
[예술 작품은 완벽함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오직 신만이 창조하시며, 나머지는 그저 모방일 뿐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화가는 그의 마음과 손에 세계를 담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름다움이란, 모든 부분이 비례에 맞게 조정되어 무엇 하나도 빼거나 변경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트]
겁탈당한 가니메데
1575년경, 캔버스에 유화, 177.2 × 188.7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24년 구입
다미아노 마차, 1573년경부터 활동
거대한 독수리가 벌거벗은 소년을 움켜쥐고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따르면, 목동인 가니메데는 아름다운 외모가 눈에 띄어 독수리로 변신한 주피터에게 납치되었고, 올림푸스산에서 신들의 식사 시중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원래 변호사 프란체스코 아소니카의 저택 테라스 천장을 장식하려고 그린 것입니다. 아소니카는 티치아노의 법률대리인이었고 마차는 티치아노의 제자였으므로, 티치아노가 마차를 아소니카에게 추천했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 그림은 팔각형이었으나 18세기 초 벽에 걸 수 있게 캔버스를 더해 직사각형으로 만들었습니다.
머큐리, 큐피드와 함께 있는 비너스 (사랑의 가르침)
1525년경, 캔버스에 유화, 155.6 × 91.4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34년 구입
코레조, 1494년부터 활동, 1534년 사망
전령의 신 머큐리가 다정하게 아들 큐피드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사랑의 신 비너스는 그 옆에서 우리를 바라봅니다. 신들의 이야기를 빌려 그려진 누드에서 이상적인 비례와 사실적인 명암법이 돋보입니다.
비너스는 원래 큐피드를 바라보았으나 지금처럼 우리와 눈이 마주치도록 수정되었는데, 이처럼 캔버스에서 바로 그림을 고치는 방식은 유화 기법에 능숙한 베네치아 화가들의 특징입니다.
[왼쪽] 나르키소스
1500년경, 목판에 유화, 23.2 × 26.5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910년 조지 솔팅 유증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의 추종자(이름 모름), 1467년경~1516 추정
젊고 아름다운 나르키소스(또는 나르시스)가 물그릇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봅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에코와 나르키소스에 대한 그리스 신화가 실려 있습니다. 나르키소스는 님프 에코의 사랑을 거절했을 뿐더러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는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나르키소스는 결국 죽고 맙니다. 나르키소스 신화는 오늘날 허영을 경계하는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른쪽] 아폴로와 다프네
1470-80년경, 목판에 유화, 29.5 × 20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76년 윈 엘리스 유증
피에로 델 폴라이우올로, 1441년경-1496년 이전
피렌체 도시 전경과 아르노강을 배경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읽힌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43BCE-17/18)의 『변신 이야기』에 담긴 신화를 그린 그림입니다. 아폴로가 활과 화살을 가지고 노는 큐피드를 놀리자 이에 기분이 상한 큐피드는 아폴로에게 황금 화살을 쏘아 다프네를 사랑하게 하고, 다프네에게는 납 화살을 쏘아 그를 거부하게 합니다. 아폴로가 다프네를 쫓아가 손이 닿는 순간, 다프네는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우스의 도움으로 아폴로를 피해 월계수 나무로 변합니다. 사랑과 두려움, 좌절이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서재에 있는 성聖 히에로니무스
1475년경, 목판에 유화, 45.7 × 36.2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94년 구입
안토넬로 다 메시나, 1456년부터 활동, 1479년 사망
4세기의 학자이자 수도사였던 성 히에로니무스(성 예로니모)가 서재에 앉아 책을 보고 있습니다. 15세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당시 서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 성경’*은 지금도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닥 타일과 반복되는 아치 등에 선 원근법이 엿보입니다. 계단 위의 공작, 자고새, 그릇에 담긴 물은 영원, 진실, 순수함을 상징합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자는 성 히에로니무스가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준 뒤 사자가 성인을 따랐다는 전설을 반영합니다. 안토넬로는 네덜란드 화가의 영향을 받아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유화에 능숙했으며, 베네치아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불가타(Vulgata) 성경 : 코이네 그리스어(헬라어) 원문 성경을 대다수 대중들이 사용하는 라틴어로 번역한 그리스도교 성경 번역본. 불가타 번역이 나올 당시에는 천박한 말로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싫어한 사람이 많았다.
성聖 제노비오의 세 가지 기적
1500년경, 목판에 템페라, 64.8 × 139.7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924년 몬드 유증
산드로 보티첼리, 1445년경~1510
5세기에 살았던 피렌체 주교 성 제노비오의 삶을 그린 연작 4점 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성 제노비오는 훗날 피렌체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이 그림에는 보티첼리가 15세기 당시 피렌체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성 제노비오가 피렌체에서 일으킨 세 가지 기적을 그렸습니다.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선 원근법이 그림에 공간감을 줍니다.
보티첼리는 장식적이고 우아한 그리스·로마신화 주제의 그림들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도미니크회 소속 수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1452~1498)를 추종하면서 이 작품처럼 경건하고 담백한 종교적인 그림을 주로 그리게 됩니다.
성모자聖母子와 세례 요한
1510~11년경, 목판에 유화, 38.9 × 32.9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65년 구입
라파엘로, 1483~1520
로마 교외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을 배경으로, 갈대로 만든 십자가를 든 세례 요한이 아기 예수에게 훗날 겪게 될 수난과 부활, 신성한 사랑을 상징하는 카네이션을 건넵니다. 섬세하게 표현한 성스러운 인물들 사이의 교감이 돋보입니다. 배경의 건축물과 성모의 모습으로 강조된 두 아이의 손이 화면 중앙에 있으며,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 속 인물들이 배경과 조화를 이룹니다.
이 작품은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 화가인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궁에 자신의 걸작인 〈아테네 학당〉을 그리던 시기에 그려졌습니다. 가바 남작 조지 캐닝(1778~1840)의 소유였으므로 ‘가바의 성모’라고도 불립니다.
성모자 聖母子
1480~90년경, 목판에 유화와 템페라, 90.8 × 64.8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55년 구입
조반니 벨리니, 1435년경~1516
중세 그림의 금빛 배경 대신 하늘과 산이 보이는 풍경 앞에 성모와 아기 예수가 다정히 앉아 있습니다. 소박한 옷차림과 부드러운 몸짓은 두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모가 손에 든 석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대리석 난간 앞에는 화가 이름이 쓰인 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벨리니가 그린 작은 성모자상은 개인의 종교 활동을 위한 그림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손꼽히는 화가 가문 출신으로, 티치아노 등 다음 세대의 베네치아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녀
1490년경, 목판에 템페라, 44.1 × 29.2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87년 구입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공방, 1449~1494
목판에 템페라 물감으로 그린 작은 크기의 작품입니다. 정교하고 정확한 선, 밝고 고른 빛의 묘사는 템페라 기법의 특징입니다. 15세기 중반 이전의 이탈리아 초상화가 대부분 고대 로마 동전에사처럼 옆모습으로 얼굴의 반만 드러낸 데 비해 그림 속 소녀는 비스듬히 앉아 있어 우리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기를란다요는 보티첼리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피렌체 화가로 미켈란젤로(1475~1564)는 젊은 시절 그의 공방에서 조수로 있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그의 공방에 있던 화가 중 한 명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인(달마티아의 여인)
1510-12년경, 캔버스에 유화, 119.4 × 96.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42년, 준남작 프랜시스 쿡이 아버지 허버트 쿡을 추모하며 예술기금을 통해 기증
티치아노, 1506년경부터 활동, 1576년 사망
티치아노가 20대 초반에 그린 초상화입니다. 머리에 두른 베일을 비롯한 투명한 천의 표현에서 화가로서 티치아노의 솜씨와 기술이 젊은 나이에 이미 완숙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반니 벨리니의 제자인 티치아노는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대표 화가로, 유럽 각국의 강력한 통치자들이 그에게 그림을 주문했습니다.
이 작품의 별칭 ‘라 스키아보나’는 ‘달마티아의 여인’이라는 뜻으로, 달마티아는 1420년부터 1797년까지 베네치아공화국의 식민지였던 아드리아해 동쪽, 지금의 크로아티아 해안지역을 말합니다.
그림 속에 조각을 그려 넣은 것은 그 당시에 있었던 ‘그림과 조각 중에 무엇이 더 뛰어난 미술인가?'에 대한 논쟁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대 로마 조각의 영향을 받은 난간 오른쪽의 옆얼굴은 티치아노가 조각을 똑같이 따라 그릴 수 있고, 심지어 그의 그림이 조각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난간에는 화가의 이름인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앞 글자 ’T,V’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인 (루치아 알바니 아보가드로 백작부인 추정, 붉은 옷을 입은 여인)
1556-60년경, 캔버스에 유화, 115 × 106.8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76년 구입
조반니 바티스타 모로니, 1520/4~1579
1534년 베르가모 귀족의 딸로 태어난 루치아 알바니 아보가드로 백작부인은 시에 재능이 있어 그녀가 쓴 소네트를 모아 엮은 책이 남아 있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 북부의 대표 초상화가인 모로나는 반짝이는 호화로운 복식, 값비싼 갑옷 등으로 귀족들의 우아함을 표현한 전신 초상화로 유명했습니다. 새틴 드레스의 화려한 다홍색과 치마의 체크무늬, 드레스의 꼬임 장식과 세로 트임은 그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로, 모로니는 유화 기법을 활용하여 질감을 잘 표현했습니다. 부채 손잡이를 손으로 가린 것은 손잡이가 귀한 재료로 만들어져 사치금지법의 규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빈첸초 모로시니
1575~80년경, 캔버스에 유화, 85.3 × 52.2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내셔널갤러리 설립 100주년과 예술기금설립 21주년을 기념하여 예술기금에서 1924년 기증.
야코포 틴토레토, 1518년경~1594
빈첸초 모로시니(1511~1588)는 157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즉위식에 베네치아 대표로 참석했는데, 이때 황금 스톨 기사단의 기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어깨에 걸친 금실로 수놓은 스톨이 이 기사단의 상징입니다.
틴토레토는 모로시니의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을 위엄 있게 표현했습니다. 노인의 얇은 피부, 앙상한 코, 주름진 얼굴 속 옅은 파란색 눈이 우리를 꿰뚫듯 쳐다봅니다. 얼굴은 물감을 꼼꼼하게 덧칠한 반면 옷은 빠른 붓질로 채웠습니다. 틴토레토는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로, 피렌체 전통을 따른 미켈란젤로의 선과 구성, 그리고 베네치아의 전통을 따른 티치아노의 색채를 융합하여 그리고자 했습니다.
보좌에 앉은 성모자聖母子와 네 천사
1506~09년경, 목판에 유화, 62.3 × 43.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58년 C. W. 다이슨 페란스 유증
퀸텐 마시스, 1465/5~1530
성모의 금빛 보좌와 왕관, 천사들이 연주하는 류트와 하프, 바닥의 카펫 등을 정교하게 그렸습니다. 아기 예수의 붉은 산호 목걸이는 그가 흘릴 피를 상징합니다. 성모자 머리 뒤에서 금색 빛줄기가 벋어 나와 이들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방식은 15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사치품이었던 터키산 카펫에 발을 올려 놓도록 한 것 역시 성모를 예우한다는 뜻입니다.
사실적인 초상화와 화려한 종교화로 잘 알려진 퀸텐 마시스는 16세기 초반 북유럽 안트베르펜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어린 공주 (덴마크의 도로테아 추정)
1530~32년경, 목판에 유화, 38.2 × 29.1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08년 구입
얀 호사르트, 1508년부터 활동, 1532년 사망
이 소녀는 망명 중이던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2세(1481~1559)의 딸 도로테아(1520~1580)로 추정됩니다. 진주를 엮은 호화로운 옷을 입었으며, 소매에 있는 옅은 파란색 원형무늬는 원래 왕족의 상징인 보라색이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1523년 크리스티안 2세가 폐위되어 쫓겨난 후 네덜란드에서 펠리페 3세의 아내 오스트리아의 마거릿(1480~1530)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사실적인 초상화로 유명한 얀 호사르트는 16세기 초 북유럽 화가 최초로 로마를 방문했고, 이후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요소들을 북유럽에 들여왔습니다.
도로테아는 왼손으로 혼천의를 거꾸로 들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혼천의의 바깥고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도로테아가 가리키는 곳은 덴마크로, 도로테아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2세가 다스리던 곳입니다. 도로테아가 혼천의를 거꾸로 들고 있는 것은 도로테아 집안의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혼천의 중간에 있는 두꺼운 고리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아마도 얀 호사르트의 이름 글자를 섞어서 만든 새로운 단어일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작품 속에 다양한 의미를 숨겨 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1594-95년경, 캔버스에 유화, 66 × 49.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86년 J. 폴 게티 2세 기금 후원으로 구입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1571-1610
한 소년이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을 도마뱀에게 물린 아픔에 깜짝 놀라 움츠리고 있습니다. 이는 짧은 감각적 쾌락 뒤에 숨어 있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은유한 것으로, 소년의 귀에 꽂힌 장미와 꽃병의 꽃 역시 곧 시들어 사라질 덧없음을 보여줍니다.
카라바조는 ‘정물을 그리는 일은 인물을 그리는 일만큼 예술적 재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그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점은 그의 혁신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초기에는 이 그림에서처럼 정물화나 일상생활의 장면을 그렸지만 곧 감정적이고 극적인 종교화를 전문적으로 그리게 됩니다.
카라바조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입니다. 그의 이탈리아 고향 마을 이름인 ‘카라바조’를 따라서 카라바조라고 불렀습니다. 카라바조는 그림 실력이 뛰어났지만, 성격이 나쁘고 거칠어서 이곳저곳에서 싸움을 일으키고 다녔습니다. 결국 카라바조는 칼싸움 끝에 사람을 죽이고 원래 살던 로마를 떠나 여러 곳으로 도망 다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죄를 용서받고 로마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다시 문제를 일으켜 감옥에 갇힙니다. 카라바조는 결국 로마에 돌아가지 못하고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페르난도 데 발라스 대주교
1640~45, 캔버스에 유화 63.5 × 59.6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967년 예술기금 후원으로 구입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스페인의 벨라스케스는 1623년 펠리페 4세의 마음에 들어 궁정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와 친분을 쌓은 플랑드르의 루벤스(1577~1640)처럼 궁정인으로서도 높은 관리가 되었으며, 그가 그린 초상화는 왕과 귀족들의 권위를 강화하는데 활용되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 페르난도 데 발데스 이 야노스는 1633년 그라나다의 대주교와 카스티야 공의회 의장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원래 전신 초상화로 그려진 작품에서 일부가 잘려 나간 것인데, 벨라스케스의 서명이 있는 종이를 든 성직자의 손 그림(마드리드 왕궁 소장)을 이 초상화의 나머지 부분으로 추정합니다.
63세의 자화상
1669, 캔버스에 유화, 86 × 70.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51년 구입
렘브란트 판 레인, 1606~1669
렘브란트는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네덜란드에서 활동했습니다. 직접 이탈리아에 가본 적은 없지만 판화나 다른 동료들을 통해 이탈리아 미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640년대 암스테르담 최고의 인기 화가였으나 이 자화상을 그릴 때는 이미 파산한 상태였습니다.
렘브란트가 죽기 몇 달 전 그린 자화상입니다. 나이 들어가는 얼굴에 집중해 물감을 두껍게 발라 얼룩덜룩한 피부, 숱이 적어진 눈썹 등을 그렸습니다. 옷과 배경은 얇게 재빨리 칠함으로써 밝은 빛을 받은 섬세한 얼굴 표정에 관심을 집중하게 합니다. 자화상으로 자신을 성찰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노인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회화 기술을 연습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성모
1640~50, 캔버스에 유화, 73 × 57.7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46년 리처드 시몬스 유증
사소페라토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 1609~1685
화가의 별명 사소페라토는 화가의 고향 이름입니다. 그는 개인의 기도를 직접 들어줄 듯한 ‘혼자 기도하는 성모’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이 도상은 가톨릭 개혁의 원칙들을 결정한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 이후 유행했습니다.
이 그림은 사실적이면서도 단순한 구도와 색채로 감동을 줍니다. 값비싼 울트라마린을 사용한 빨간색, 흰색 물감만으로 그려진 성모는 강한 빛을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조각 같은 얼굴과 우아한 색채는 르네상스 시대 라파엘로의 화풍과 비슷하지만 극적인 강렬한 빛은 바로크 회화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성聖 마리아 막달레나
1634~35년경, 캔버스에 유화, 79.3 × 68.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40년 구입
귀도 레니, 1575~1642
성 마리아 막달레나는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명입니다. 서유럽 회화에서 대부분 쾌락을 거부하고 참회하며 그리스도를 섬기기로 결심한 매춘부로 그려집니다.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17세기에 자주 그려진 주제인데, 이는 가톨릭 개혁 시기 교회에서 참회를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주제로 감동적인 종교화를 그려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리고자 했습니다.
귀도 레니와 그의 제자들은 성 마리아 막달레나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도박에 빠져 빚이 점점 늘어난 귀도 레니는 빚을 갚기 위해 빠르고 쉽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그림 중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로 작은 크기의 그림을 여러 개 그려서 판 것입니다. 〈성 마리아 막달레나〉같은 성스러운 그림을 그린 이유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서라니 참 놀랍습니다.
바커스 양육
1628년경, 캔버스에 유화, 80.9 × 97.7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31년 조지 제임스 첨리 유증. 1836년부터 내셔널갤러리 소장
니콜라 푸생, 1594~1665
푸생은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주의를 이끈 화가로,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일생을 대부분 로마에서 보냈습니다. 푸생은 고대의 문화를 바탕으로 현실보다 완벽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술의 신이자 주피터의 아들인 바커스가 이모인 이노의 보살핌을 받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림에서 바커스는 이노의 남편 아타마스에게 의지해 은그릇에 짜놓은 포도즙을 마십니다. 서로 끌어안고 있는 두 아기는 이노의 아들들입니다. 주피터의 아내 주노는 이노가 바커스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질투해 이노와 아타마스를 미치광이로 만들었고, 아타마스는 자기 아들 중 한 명을 죽이고 맙니다.
4원소: 불
1570, 캔버스에 유화, 158.2 × 215.4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2001년 구입
요아힘 베케라르, 1535년경~1575
북유렵 안트베르펜 출신 화가인 베케라르는 일상적인 장면에 종교적 주제로 담은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이 방에는 4원소인 불, 물, 공기, 흙을 주제로한 4점 연작 중 <불>과 <물>이 전시 중입니다. 각 그림에는 주제가 되는 원소와 관련된 생산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불〉에서 그림 속 여성들은 불에 구울 고기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먼 배경에는 자매인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마르타는 그리스도에게 동생 마리아가 자기의 음식 준비를 돕도록 얘기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원소: 물
1569, 캔버스에 유화, 158.1 × 214.9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2001년 구입
요아힘 베케라르, 1535년경~1575
<물>에 그려진 16세기 안트베르펜의 시장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가 진영되어 있습니다. 그림 속 먹거리는 각각 가장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각도로 배치된 것입니다. 그림의 풍족한 음식들은 실제 관찰을 통해 세심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베케라르는 빠르고 간략하지만 효과적인 붓칠로 그림을 그린 화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잘 보여줍니다.
먼 배경에는 어부가 그물을 끌어올리는 모습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사도들 앞에 나타나 많은 물고기를 잡도록 해주었다는 풍어의 기적을 그린 것입니다.
인도교가 있는 풍경
1518~20년경, 목판에 덧댄 양피지에 유화, 41.2 × 35.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61년 구입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1480년경~1538
독일 화가 알트도르퍼가 사람 없이 풍경만을 그린 작품입니다. 다른 주제의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풍경 그 자체를 독립된 주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16세기 초 풍경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반영합니다.
숲속 바위에서 강을 가로질러 성문으로 가는 곳까지 높은 다리가 뻗어있습니다. 다리 끝이 건물에 닿지 않기에 문으로 들어가려면 섬에서 다리를 내려주어야 합니다. 알트도르퍼는 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세하게 묘사하고자 했으며, 종교화에도 역시 자연 속 풍경을 포함시켜 자신의 관심사를 드러냈습니다.
작은 집이 있는 숲 풍경
1665년경, 캔버스에 유화, 99.5 × 130.5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76년 윈 엘리스 유증
메인더르트 호베마, 1638~1709
수레바퀴 자국이 있는 길 위에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가 햇살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멀리 개와 산책하는 한 남자와 들판을 걷는 남녀가 보이고, 한 여성이 오른쪽 시골집 문에 서서 밖을 바라봅니다.
호베마의 고향 암스테르담 근처 할렘 주변의 숲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그가 즐겨 사용한 소재들을 모아 이상적인 전원 모습을 그린 상상의 풍경화입니다.
들판에서 말을 타는 남성과 목동, 두 소년 그리고 일곱 마리 소
1655~60년경, 캔버스에 유화, 80 × 106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71년 구입
알베르트 코이프, 1620~1691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일상의 풍경과 사람들이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등 뒤에서 시작한 우리의 시선은 소몰이꾼의 눈을 따라 풍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에서 횔동한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의 고전적 풍경화를 떠올리게 하는 황금빛 햇살이 네덜란드 시골 일상의 한 장면을 비춥니다. 금빛 햇살은 코이프 작품의 특집으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이탈리아 풍경화 양식을 반영한 이런 유형의 풍경화가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강풍 속 네덜란드 배와 작은 배들
1658, 캔버스에 유화, 55 × 70 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910년 솔팅 유증
빌럼 판 더 펠더, 1633-1707
빌럼 판 더 펠더는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에서 바다 풍경화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배를 정확하게 그린 그의 그림은 당시 배 모습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흰 돛을 날리는 군함의 큰 돛대에는 네덜란드 국기가 달려 있고 고물에는 홀란트주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앞쪽의 배에 달린 깃발에 화가의 서명이 있습니다.
빌럼 판 더 펠더는 정교한 배를 그린 흑백 드로잉으로 유명한 아버지 빌럼 판 더 펠더(1610/1~1693)에게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판 더 펠더 가족은 1672년, 프랑스의 침략으로 암스테르담에 경제 위기가 오자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18세기 영국에서 바다 풍경화가 발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전(2)
여관 (깨진 달걀)1665~70년경, 캔버스에 유화, 43.3 × 38.1 cm / 내셔널갤러리 런던, 1941년 오토 베이트 유증 얀 스테인, 1726~1679 얀 스테인은 고향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여관을 운영했습니다. 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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