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백주의 악몽

2023. 7. 16. 09:47입맛

728x90

며칠 사이 '거송정'에 두 번이나 발걸음 한다. 친구들과 드라이브하면서 먹을 복이 트였다. 이번에는 볶음탕을 주문했다. 대(大) 자는 다섯이 먹어도 충분했다. 달큰한 듯 얼큰한 듯한 국물 맛에 밥을 세 개 추가해 비볐다. 점심에 이어 저녁까지 포식하니 몇 끼 굶어도 괜찮은 기분이었다. (2023.7.13. with: 인산, 손공민)

헐티로 1325


예전에는 볶음탕이나 불고기, 찌개류가 대세였는데 요즘은 흔치 않다. 밥집에서 국물 있는 음식은 취급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오랜만에 볶음탕을 먹으니, 옛일이 떠올랐다.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긴다. 동해백주'가 선풍적 인기를 몰아치던 80년대 중반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할 때다.

어느 토요일, 업무를 마친 후 회식하려고 -운전기사가  모는- 사무실 봉고차를 타고 파계사 인근 닭볶음탕 집에 갔다. 동해백주는 한국산 고량주로 30도 되는 독주였다. 여섯인가 일곱이던가? 취기가 올랐다. 왕고참이 재떨이를 휴지로 쓱쓱 닦아 소주를 붓더니 먼저 마신 후 재떨이를 돌렸다. 윗사람이 주는 것이라서 신들린 듯 돌아가며 모두가 마셨다. 그래도 속이 차지 않은 왕고참은 기어코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겼다. 오른쪽 구두를 벗어 동해백주로 씻어 내고 한 병을 콸콸 붓더니 먼저 쭉 들이키고 고참 순으로 돌렸다. 구두 술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긴다"를 복창하며 눈을 질끈 감고 마셨다. 술 잘 먹는 놈이 일도 잘한다는 소리를 칭찬으로 듣던 시대였다. 닭볶음탕 하나로 동해백주를 싺쓸이했으니, 모두 광인이 되어 하얗게 재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때는 무서운 것이 없던 까막눈 시절이었다.

'입맛'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포회수산 물회로 복달임  (0) 2023.07.22
차콜우드 바비큐  (0) 2023.07.17
마고 포레스트 카페  (0) 2023.07.15
대백프라자 전복마을식당  (1) 2023.07.14
화중의 전가복  (1) 2023.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