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하모니카 연주

2023. 6. 7. 16:15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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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일요일 친구가 교회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한다. 순ㅇ 형님과 나를 불러놓고, 그동안 독학으로 연습했다면서 망신당하지 않을까 염려되니 한 번 듣고 심사해 달라고 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자신 있는 표정이다.

친구는 보면대에 간이 마이크와 소형 반주기를 얹어 놓고 앉았다. 심호흡하더니 먼저 인사말을 간략히 했다. 친구 부인은 지난해 뇌수술을 받았다. 인사말에 부인의 쾌유를 비는 애틋한 심경도 숨기지 않았다.
친구가 반주기 볼륨을 낮게 하여 하모니카를 불었다. 아일랜드 민요 You Raiser Me Up 앞 소절을 어느 정도 불고 찬송가 중 9곡을 뽑아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연결해 연주했다. 모두 열 곡을 하나의 곡으로 붙였다. 나로서는 찬송가를 모르지만, 연주는 마치 서부 영화에서 보았던 황량한 황야의 쓸쓸하고 애잔한 장면들이 연상됐다. 그것은 그리움과도 같았다. 친구의 하모니카는 음유시인의 노래였다. 일요일 날 교회에서 연주하면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가 쏟아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력이 끝판왕인 친구는 평가받은 후 심사위원에게 한턱냈다. 하모니카를 핑계로 무료한 나를 위로하려는 숨은 뜻도 있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기분 좋게 헤어졌다. 불콰해진 얼굴은 어스름에 묻히고 아직 끝나지 않은 하모니카 여운은 어둠을 타고 흐른다. 저 멀리 보이는 전깃줄에 음표들이 오종종히 참새처럼 앉아있다. 내 목소리가 선율로 바뀌어 흥얼댄다. 악기는 작았지만, 연주는 풍성했다. (202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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