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규슈 올레에서

2023. 4. 3. 15:24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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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햇살 풍성한 가을날 2주 동안 규슈 올레 8개 코스를 걸었다. 규슈 올레는 제주 올레를 수입해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다. 코스당 걷는 시간은 평균 4~5시간 정도이나 올레가 지역 곳곳에 따로 떨어져 있어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올레길에 접근하려면 지하철이나 열차, 시외버스를 매일 바꾸어 타야 했다. 아침 일찍 터미널에 도착하면 먼저 점심 도시락을 샀다. 마트에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도시락이 진열돼 있었다. 가격도 싸고 음식이 알맞게 담긴 400~500엔짜리가 잔반이 남지 않게 다 먹을 수 있었다. 포장은 빡빡한 종이거나 얇은 펄프여서 음식을 먹은 후 돌돌 말면 부피가 줄었다. 열차나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가면서 산이 가물가물하는 평야가 나올 때는 일본이 섬나라 같지 않았다.
 
올레의 상징물인 간세(조랑말의 제주 방언)와 화살표, 리본 등이 제주와 똑같다. 다만, 제주가 귤을 상징하는 주황색이지만, 규슈는 신사의 토리이(鳥居)* 색깔인 다홍색이다. 리본과 화살표 표식을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올레길 나들목에는 대부분 전자감지기가 설치돼 있었다. 진·출입하는 인원수를 파악하는 장비로 보였다.
 
방문 당시에, 규슈에 21개 올레길이 개발돼 있었다. 여행 일정을 감안, 교통이 용이한 북부의 코스 중에서 선정했다. 대나무밭, 녹색 차밭, 산상 호수, 온천마을, 목장, 섬, 멀리서나마 화산 연기를 보면서 걷는 등 코스마다 특색이 있었다. 가을인 만큼 아름다운 만추의 풍치를 만끽해 인상적인 여행을 하였다. 8개 코스를 걷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을 한 번 만났다.
 
하루 코스는 대략 12~14km이었지만, 우리는 배 이상을 걸었다. 올레길을 걷고 난 다음 주변을 살펴보느라 걸음 수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일본의 문화는 배울 점도 있었다.
 
지하철은 내리는 승객이 100% 내린 후 승차하고, 객실 안에서는 등에 진 가방을 벗어 앞으로 메거나 품에 안았다. 버스 기사는 운행 중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목욕탕 물바가지는 사용 후 씻어서 제자리에 갖다 놓고, 공용 급수대 물바가지도 직접 입에 대지 않고 손바닥에 부어 음용하고 씻은 후 제자리에 두었다. 사소했지만 눈여겨 보였다.
공사장은 가림판 밖으로 흙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 가까이 접근하면 오가는 차량은 스스로 일시 정지했다. 도로 무단주차가 보이지 않았고 한적한 시골에도 유료주차장을 이용했다, 쓰레기봉투는 바람에 흩날리지 않도록 공용 철제 박스에 넣는 등 공중질서와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끽연 문화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여담이지만, 구루메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일본인 중년과 –일본말을 모르기 때문에- 구글번역기를 이용해 대화했다. 이 사람에게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대체로 과거를 반성한다면서 호의적이었다. 독도에 관해서는 그는 “정치인들 관심사다. 우리 국민은 관심 없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주점에서 혼자 사케를 마시던 일본인 남성이 옆자리의 나에게 사케 한 잔(온더락)을 냈다. “고맙다”라며 잔을 부딪친 후 서로 마셨는데, 그 사람이 놀랐다. 알고 보니 나는 잔을 단숨에 비우고, 그들은 조금씩 홀짝 마시는 것이었다. 음주문화 차이가 확연했다.
 
* 토리이(鳥居, torii): 일본 신사(神社)의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를 나타내는 의식적인 관문. 신성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의 경계를 나타낸다. 2개의 원통형 수직기둥 위에 직4각형의 들보가 가로로 얹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규슈 올레 / 체크 표시는 다녀온 곳
니고야성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거북선과 일본전함. / 나고야성 박물관은 임진, 정유재란의 유적을 보존, 정비하고 과거의 역사적 사실의 반성을 통해 일본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사를 조사, 연구, 전시, 소개하여 앞으로 우호 교류의 추진 거점이 되는 것을 목표로 건립되었다.[나고야성 박물관 기록 발췌]
거북선과 일본 전함 모형 앞에 붙어 있는 게시판
올레 시작점에는 한국인을 위한 안내 자료가 많았다.
후지산을 닮아 분고후지로 불리는 유후다케산(1,584m)
우케노구치 온천은 노벨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즐겨 찾았던 곳이라고 했다.
야메 코스는 광활한 녹차 밭의 초록빛이 올레를 걷는 내내 따라왔다. 야메시는 거제시와 자매도시를 맺고 교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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