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곶과 한반도 형상

2023. 4. 1. 11:21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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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바다 일출을 보려고 별렀는데 기회가 없었다. 기어이 오늘 새벽 4시 집을 나섰다. 고불고불한 호미로에 접어들자 얼핏얼핏 나타나는 안개가 운전을 방해했다. 해맞이광장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니 운전하며 느낀 예감이 적중했다. 해무가 두텁고 짙게 끼어 일출은 보지 못했다. 기다리다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보였다. 날씨가 맑은데 일출을 보여주지 않으니 해님도 만우절을 즐기나 보다. 그래도 늦게나마 둥근 해가 둥실 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호미곶, ‘호랑이 꼬리’를 ‘토끼 꼬리’라고 알았다. 그냥 그렇게. 선생님 말씀만 습득해 비하인 줄도, 비판할 줄도 몰랐다. 돌이켜 보면 선생님도 그렇게 알았으리라. 지금은 토끼 꼬리로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호미곶은 동을배곶 또는 동배곶으로 불리다가 1920년대 말 조선총독부에서 장기갑(岬)으로 고쳤다. 광복 이후 전국의 岬(갑)을 串(곶)으로 개칭하면서 장기곶이 되었다. 그 후 장기곶이 호미곶으로 바뀌었다.
 
호미곶 가로등 장식이 호랑이이고, 호미곶 등대(항로표지관리소)에도 호랑이 조각이 만들어져 있다. 한반도 형상은 호랑이, 호미곶은 꼬리를 상징하는 의미가 담겼다.
한반도 형상을 두고 조선 후기 이전까지는 ‘서쪽으로 얼굴을 들어 중국에 읍하고 있는 형상’[이중환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편]이라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고토 분지로(일본 지질학자)가 ‘서 있는 토끼를 닮았다’라고 비하했다. 이에 최남선이 ‘맹호가 발을 들고 허우적거리면서 동아시아 대륙을 향하여 나르는 듯 뛰는 듯 생기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라고 하면서 호랑이 형상 그림을 잡지 ‘소년’ 창간호(1908)에 실었다.
 
그 후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02년 최승훈(당시 한국조직문화연구소장) 선생은 한반도를 누에 형상이라고 했다. 누에는 뽕잎을 먹을 때 가슴을 내밀고 머리를 쳐들고 먹는다. 누에 항문 쪽에 해당하는 다도해 섬들은 누에 배설물, 광활한 대륙은 뽕잎으로 해석했다. 이 주장은 특허까지 받았다.
 
최승훈 선생의 주장이 한반도 형상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것 같아 감명받았다.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오늘날 가장 필요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호미곶 해맞이광장
새천년을 맞아, 1999.12.10. 설치한 <상생의 손>은 김승국(영남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작품이다. 재질은 브론즈, 돌, 주철로 광장의 왼손은 높이 5.5m, 무게 13톤, 동쪽 바다의 오른손은 높이 8.5m, 무게 18톤에 이른다. 조형물의 의미는 양극화 시대의 갈등과 배제를 <한 손의 시대>라면 새천년은 화해하고 상생하는 <두 손의 시대>라는 정신을 상징한다. 오른손은 서구적인 패러다임을 상징하고 왼손은 동양적 패러다임을 표상한다. (안내판에서 요약 발췌)
광장의 왼손은 만질 수 있다.
일출 보러 나오신 분들
바다의 오른손은 만질 수 없어 아쉽다, / 수평선은 검은 해무가 커튼을 친 듯...
갈매기가 상생의 손에 앉지 않았다.
둥근 해가 둥실 떴다. 다시 올께요, 해님~~~
호미곶 등대는 26.4m 높이에서 불을 밝힌지 115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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