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사 녹유신장상벽전

2025. 5. 2. 07:56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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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녹유신장상벽전


* 국립경주박물관 해설
사천왕사(四天王寺)는 삼국 통일 후 679년(문무왕 19) 경주 낭산에 세운 절이다. 사천왕사는 1금당 동서 쌍탑의 가람배치인 것이 발굴로 확인되었다. 녹유신장상벽전(綠釉神將像甓塼)은 사천왕사 동서 목탑 기단부 4면을 장식한 것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두고 그사이에 넝쿨무늬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기단에 배치되었다. 세 가지 도상으로 이루어진 신장상벽전은 탑 기단부 4면에 각 6개씩 총 24개가 설치되었다. 조각에 능통한 신라의 승려 양지(良志)가 천왕사 탑 아래의 팔부중을 제작하였다는 『삼국유사』 기록에 따라 양지가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왼쪽을 바라보는 신장상.
정면을 바라보는 신장상.
오른쪽을 바라보는 신장상.
해설판의 한자 표기 중 壁(벽)은 甓(벽돌)의 오기로 수정 필요.


* 탐방 일자: 2025.4.26.

사천왕사지(2025.1.19.)

* 경주 사천왕사지(사적)
* 지정(등록)일: 1963.1.21.
*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반동 935-2번지
* 국가유산청 해설(요약)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있는 신라의 절터로 신문왕릉 옆, 선덕여왕릉 아래에 있다.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중국 당나라는 신라가 그들의 도독부(계림도독부)를 공격한다는 핑계로 50만 대군을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이에 문무왕이 명랑 법사에게 적을 막을 계책을 구하자, 이곳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짓고 부처의 힘을 빌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의 침략으로 절을 완성할 시간이 없게 되자, 비단과 풀로 절의 모습을 갖춘 뒤 명승 12인과 더불어 밀교의 비법인 문두루비법을 썼다. 그러자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풍랑이 크게 일어 당나라 배가 모두 가라앉았다. 그 후 5년 만에 절을 완성(679)하고 사천왕사라 하였다.
이곳은 원래 신유림(神遊林)이라 하여 신라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곳이다. 절터에는 머리 부분이 없어진 귀부 2기와 비신, 그리고 당간지주 1기가 남아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사천왕사는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 배치로 신라 호국불교의 성격과 신라인들의 불교관·우주관을 잘 보여주는 절이다. 경덕왕 때 향가인 ‘도솔가’, ‘제망매가’를 지은 고승 월명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2025.1.19. 경주 사천왕사지/ 처음 방문한 이날은 드넓은 터에 달랑, 기단 하나에 조각상이 복원된 모습을 보고 궁금했는데, 오늘 박물관 관람을 통해, 중대 신라 불교 조각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녹유신장상벽전(綠釉神將像甓塼)이란 것을 알게 됐다. 조각조각 부서진 파편을 맞추어 복원한 것이다.
녹유신장벽전은 동,서 목탑의 기단부 네 면에 모두 24구(동,서 목탑 총 48구)가 배치되었으며, 종류는 3가지(A. B. C형)였다. 각 상은 중앙계단을 기준으로 왼쪽에 3상. 오른쪽에 3상씩 모두 6구가 배치됐다. 배열 순서는 중앙을 바라보고 있는 B형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을 바라보는 A형, 왼쪽을 바라보는 C형을 좌우로 위치하여 사주경계 되도록 배치했다.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