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낙동서원

2025. 4. 13. 10:35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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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송현로7길 32 (상인동)


* 낙동서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요약)
1708년(숙종 34)에 단양우씨의 현조인 우현보(禹玄寶)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우배선(禹拜善)을 향사하기 위해 설립한 서원이었다. 당초 덕동서원(德東書院)으로 건립됐다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65년 후손들이 다시 건립해 낙동서원(洛東書院)으로 명칭 변경한 후 향내 유림에 헌납했다.
현재는 우현보와 우배선 외에 우탁(禹倬), 신현(申賢), 우길생(禹吉生)을 함께 모시고 있다. 그중 우탁은 본래 예안의 역동서원에서 향사했으나 역동서원이 1871년(고종 8) 훼철되어 낙동서원에 모신 것이다. 서원은 사당인 계현사(啓賢祠)와 강당인 정교당(正敎堂)으로 구성돼 있다. 계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정교당은 정면 8칸, 측면 2칸의 ‘ㄱ’ 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낙동서원은 건물 안에 강당과 두 개의 재실(處仁軒, 持敬齋)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향사를 지낸다.

낙동서원 현장 안내판
낙동서원



* memo: 지인들과 점심 먹고 커피를 마시려고 월곡역사공원에 갔다. 그늘에서 벚꽃 낙화를 즐기다가 공원 안의 낙동서원을 발견했다. 둘러보려니 문이 닫혀 있어 담장 넘어 기웃거리다 안내판을 읽어봤다. 서원의 내력 없이 배향한 '역동우선생(우탁), 불훤재신공(신현), 적성군우공(우길생), 양호당우공(우현보), 월곡우공(우배선)' 다섯 분의 생애가 간단히 적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단양 사인암에 소풍 갔다가 우탁 선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성품이 강직해 고려가 멸망한 후 일체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선생의 향사를 역동서원에서 받드는 줄 알았는데, 낙동서원에서도 모시고 있었다.  -단양 우 씨가 아니지만, 우탁 문하에서 학문을 쌓은- 신현도 함께 배향하는 것을 안내판을 보고 알게 됐다. 신현은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의 12세손이다.
우탁 선생의 백발가를 상기해 본다. (2025.4.10.)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들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백발은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데없다/ 잠시만 빌려다가 머리 위에 불게 하여/ 귀밑에 해 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

늙지 말고 다시 젊어져 보려 했더니/ 청춘이 날 속이고 백발이 다 되었구나/ 이따금 꽃밭을 지날 때면 죄지은 듯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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