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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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상자
사과가 📦 택배로 왔다. ○우회에서 보냈다. 회원들에게 일 년에 두 번 사과를 보내온다. 각자가 낸 회비로 구입하는 것이지만, 뜻밖의 선물 같아 기분이 좋다. 그동안 사과값이 비싸 몇 개씩 사서 먹다 상자째 받으니 집사람이 억세게 좋아한다. 사과는 퇴직하고 평광동 골짝에서 과수원 농사 짓는 회원에게 주문해 택배 받는다. 🍎 맛이 달고 상큼하다. 집사람이 때마침 놀러 온 자녀에게 봉지에 몇 개씩 담아 쥐여주는 손길이 다사롭다. 늘그막에 모임을 유지하니 행복하다. 한창때는 이런저런 모임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됐다. 퇴직하고 나면 만남이 뜸해지다가 시나브로 연락마저 끊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나마 몇 개의 모임이 유지돼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젊을 때는 모임의 분위기가..
2024.11.17 -
짬뽕 지존 범어점
지인이 별스러운 짬뽕이 있다면서 소개했다. 범어역 1번 출구에서 지척인 범어 N타워 2층에 위치한 이었다. 홀이 넓고 깨끗했다. 사장님이 친절하게 맞아준다. 저녁 치고는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다. 지존 짬뽕과 쌀국수 짬뽕, 짬짜면 등 메뉴가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테이블 키오스크로 수제비 짬뽕, 순두부 짬뽕밥, 찹쌀 탕수육, 갈비 만두를 주문했다. 탕수육이 먼저 나왔다. 찹쌀이어선지 하얗고 오징어튀김처럼 길다. 양파를 채 쳐서 고명으로 올려놓았다. 접시 여백에 부어진 새콤, 달싹한 탕수 소스가 꿀처럼 보인다. 찍먹 전용이었다. 탕수육에 양파를 곁들이니 식감이 깔끔했다. 소짜가 세 사람에게 적당했다. 탕수육을 먹고 나니 벌건 국물이 그득한 수제비 짬뽕과 순두부 짬뽕밥이 나왔다. 메뉴 이름 그대로 짬뽕 국물 ..
2024.11.16 -
국수 사랑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회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 백석, 중에서 - 지인에게 마른국수 4kg을 얻었다. 자기는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선물 받은 국수를 나누어 주었다. 국수를 끼니로 때우기도 하지만 출출할 때 간식거리나 별미로도 적당하다. 예전부터 면은 장수식품이라 해서 생일날과 잔칫날 즐겨 먹는다. 얻어온 국수로 집에 사 놓은 짜장 소스를 볶아 짜장 국수를 만들었다. 물에서 금방 건져낸 국수는 담백하고 시원해 좋았고, 짜장은 달달하고 감칠맛이 났다. 단무지가 없어도 어릴 때 좋아한 짜장면 맛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집에서 국수를 삶아 쇠고깃국이나 추어탕에 말아 먹고, 된장찌개나 다른 찌개류에도 풀어 먹는다. 김치를 볶아 섞어 먹기도 하니 국수 사랑이 어지간하다..
2024.11.15 -
낙엽 / R. 구르몽
깊어지는 가을, 슬픈 음악처럼 나뭇잎이 진다. 아침 출근길 횡단보도를 건너면 제법 구르는 소리를 내던 갈잎이 이제는 이불처럼 쌓였다. 나무는 동절기를 대비하느라 잎을 떨어내는데, 나는 오히려 지난여름을 떠올린다. 짙은 녹음을 만들어주던 무성하던 잎 넓은 이파리를 그리며 돌아오지 않을 상념에 잠긴다. 부허하던 젊은 시절, 소쩍새 우는 사연을 찾아 낡은 시집을 뒤적인다. 시몬, 나뭇잎새 져 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쓸쓸하다 낙엽은 덧없이 버림을 받아 땅 위에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석양의 낙엽 모습은 쓸쓸하다 바람에 불릴 적마다 낙엽은 상냥스러이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2024.11.14 -
창해물회 대구탕
먹거리만큼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매개체도 흔치 않다. 안부를 나누거나, 과업을 진행할 때 최애의 인사말이 '밥 한번 먹자'다.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싫고 미운 사람과는 밥 먹는 것을 기피한다. 그러고 보면 밥을 같이 먹는 것은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이른 아침 동호회 회장님이 '12:30. 창해물회, 대구탕 점심' 문자를 보내왔다. 얼마 전부터 감기로 컨디션이 별로였는데 쾌차하신 모양이다. 창해물회는 가끔 들리는 집이다. 갈 때마다 손님이 예전만 못해 공연히 근심됐는데, 날이 차가워진 덕분인지 예상과 달리 손님이 많았다. 코리안 타임을 싫어하면서도 십 분 늦었다. 먼저 도착한 회장님이 대구탕을 주문하고 계산까지 해두었다. 곧 뜨거운 음식이 나왔다. 수성못 맛..
2024.11.13 -
경산 환성사
하양읍 스타벅스 무학점을 지나 한 줄기 후미진 도로를 5km 정도 따라가니 환성사다. 사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언저리 빈터, 파란 하늘이 트였고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울린 맨땅바닥 주차장이 자연 친화적이다. 오른쪽에 일주문이 서 있다. 속(俗)과 성(聖)의 경계가 지척이다. 일주문이 특이하다. 대부분 둥근 목조기둥 2주를 세운 것이 일반적인데, 네 개의 돌기둥이다. 양 끝의 두 기둥은 사각이고 자세히 보니 가운데 두 개는 팔각이다. 일주문은 세속의 번뇌를 문밖에 내려놓고 오직 일심 하나만 가지고 도량으로 들어오라는 상징적인 문이다. 한 발을 내디디니 청정 법계다. 일개 범부가 번뇌 망상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일주문을 지나 가람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에 작은 연못이 보인다. 환성사 쇠..
2024.11.12 -
평화시장 닭똥집 '고인돌'
코로나19로 위중한 시절, 은퇴한 옛 동료 네 명이 얼굴을 잊을까 봐 매달 한 번씩 만났다. 돌아가며 코로나에 한 번씩 걸리기도 했으나 별 탈 없이 회복됐다. 역설이지만, 아직도 만나 함께 식사할 수 있는 행복이 코로나 덕분이다. 오늘은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에서 점심 먹기로 했다. S가 오는 길에 우연히 시장 인근에 사는 지인을 만나 이 맛집이라며 추천받았다고 해 거기에 갔다. 닭똥집 하면 선입견이 예스럽고 누추할 것만 같은데 천만의 말씀, 밝고 청결했다. 종업원도 싹싹하고 친절하다. 저녁때가 피크 타임 업종이라 점심때는 손님이 많지 않아 오히려 -사장님에겐 미안하지만- 우리는 낫다. 찜닭과 닭똥집 모듬을 주문했다. 갓 튀겨낸 닭똥집이 먼저 나왔다. 한 접시에 간장, 양념, 튀김 세 종류를 담았다. ..
2024.11.11 -
신천의 이공제 비각
신천 상동교 인근 도롯가에 낯선 비각이 보인다. 둔치를 걷다가 비각에 가려면 계단을 올라야 한다. 비각 안에 옛 비석 3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왼쪽과 가운데는 이공제(李公堤) 세 글자가, 오른쪽은 군수 이후범선 영세 불망비(郡守李侯範善永世不忘碑) 열한 자가 새겨져 있었다. 비석은 신천 치수에 공이 큰 목민관의 공덕을 기리고자 백성들이 세운 송덕비라고 한다. 대구시에서 신천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비각을 만들어(3평) 이서공원이라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매년 음력 1월 14일, 수성문화원에서 이서와 이범선을 신천의 호안신(護岸神)으로 받들어 비각 앞에서 향사를 모시며 수해 없기를 기원한다. 는 1778년(정조 2) 대구 판관 이서(李溆)*가 자신의 사비를 털어 신천에 제방 10여 리를 쌓아 하천 범람..
2024.11.10 -
두 얼굴의 하루
올가을 들어 가장 춥다는 기상청 엄포에 지인들과 복지리탕으로 몸을 덥힌 후 신천에 나갔다. 수성교 다리 계단에서 신천으로 내려가 물가를 걸어 여덟 개의 다리* 밑을 통과했다. 하늘은 맑고 햇살이 순한데 바람은 잔잔해 마치 어느 봄날 같았다. 수량은 많지 않으나 물이 맑고, 종아리 굵기 뺨치는 잉어 떼가 유유히 노닐고, 외로운 왜가리는 강태공 흉내를 낸다. 유영을 즐기는 청둥오리는 물살에 몸을 맡긴다. 걷는 이는 걷고, 달리는 사람은 달렸다. 영감님들은 영감님대로 모여 장기를 두고, 할머니는 할머니끼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니 모두 한가하고 느긋하다. 둔치를 가꾸는 작업자의 일손만 바쁘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배어있음을 알겠다. 커피숍 TV가 왕왕거린다. 오전에 있은 윤석열 ..
2024.11.09 -
일관성을 지켜야겠다
이 년 전부터 소일거리로 티스토리를 애용한다. 매일 잡문을 하나씩 올린다. 자정 전에 다음날 올릴 스토리를 비공개로 써두었다가 날이 새면 공개로 변경한다. 나름의 익힌 요령이다. 오늘 아침 스토리를 공개로 전환하니, 어제부터 시작된 '오브란 챌린지'에 미참여로 나타난다. 사전 등록한 스토리를 날짜 변경하는 꼼수를 방지하려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 취지에 맞는다. '오브란 챌린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당일 당일 올려야겠다. 얼마 전 일관성과 융통성에 관해 느낀 바가 있었다. 티스토리 글쓰기도 다름 아니다. 어찌 보면 익일의 스토리를 미리 비공개로 해두었다가 공개하는 것은 매일 해야 한다는 원칙에 반한다. 융통성일 뿐이다. 오늘부터는 일관성을 지키자. (2024.11.8.)
2024.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