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3. 01:52ㆍ입맛
먹거리만큼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매개체도 흔치 않다. 안부를 나누거나, 과업을 진행할 때 최애의 인사말이 '밥 한번 먹자'다.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싫고 미운 사람과는 밥 먹는 것을 기피한다. 그러고 보면 밥을 같이 먹는 것은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이른 아침 동호회 회장님이 '12:30. 창해물회, 대구탕 점심' 문자를 보내왔다. 얼마 전부터 감기로 컨디션이 별로였는데 쾌차하신 모양이다. 창해물회는 가끔 들리는 집이다. 갈 때마다 손님이 예전만 못해 공연히 근심됐는데, 날이 차가워진 덕분인지 예상과 달리 손님이 많았다. 코리안 타임을 싫어하면서도 십 분 늦었다. 먼저 도착한 회장님이 대구탕을 주문하고 계산까지 해두었다. 곧 뜨거운 음식이 나왔다.
수성못 맛집인 창해물회는 도다리, 광어, 세꼬시 등 생선회가 전문이지만, 식사 전용의 물회와 탕도 여느 식당 못지않게 잘한다. 대구탕에는 매운탕과 안 매운탕인 지리가 있는데, 고춧가루의 자극적인 매운맛보다 우려낸 맛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지리를 조금 더 좋아한다. 뚝배기에서 펄펄 끓는 국물이 가라앉도록 잠시 기다렸다가 먼저 국물 맛을 봤다. 시원했다. 고명으로 얹은 쑥갓의 파릇한 색감도 신선해 보였다. 생선의 흰 살도 한 조각 떼어 맛본다. 비린내가 없고 하양만큼이나 맛이 깔끔했다. 무도 푹 익어 스펀지처럼 부드러웠다. 뜨거운 맑은 탕으로 속을 덥힌 후 밥뚜껑을 열었다. 식사 진도를 맞추려고 천천히 먹는다고 먹었는데 어느 사이 뚝배기를 다 비웠다. 숟가락을 놓을 때는 고뿔에 걸렸던 회장님 안색도 발그스레 해졌다. 대구탕 참맛은 추울 때다. 오늘이 바로 그날 같다. 곧 동호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회장님과 나. 속 시원한 대구탕만큼 기분도 날아갈 듯 가볍다.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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