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원당암에서
2024. 2. 10. 23:24ㆍ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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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원단을 알리는 아침 해를 본 후 영단에 참배하려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원당암에 도착해 미소굴에서 해님을 기다렸다. 영하 6도, 구름 한 점 없이 상쾌한 날씨였으나 동녘은 흐렸다.
願堂에 참배하고 나오는데 노보살이 아침 먹고 왔느냐면서 떡국을 함께 먹자고 했다. 큰 대접의 떡국을 작은 그릇에 조금 덜고 대접은 내게 주었다. 떡국이 조금 식었으나 온기가 있었다. 떡국을 먹으면서 보살이 "스님들이 방장스님께 세배드린 후 공양한 떡국을 보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살은 떡국을 천천히 먹으며 숟가락을 함께 놓고는 커피까지 타 주셨다. 올해는 먹을 복이 있으려나. 설날 아침에 공양간도 아닌 법당에서 도승용 떡국을 먹었으니, 범부로서는 예삿일이 아니다. 떡국값을 치르자면 올 한해 경거망동을 삼가야겠지….
백팔계단 정자로 갔다. 치우지 못한 잔설이 얼어서 굳었다. 계단 앞까지 누군가 다녀간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혀있었다. 잔설을 밟으니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아련한 산행의 추억을 불러왔다. 피어나는 한 시절 한 평의 내 땅 없이 국토의 산야를 누볐다. 그것은 이제 그리움이라는 보석이 돼 가슴에 박혔다. 정자에는 낙숫물이 잔설에다 동그란 무늬를 그렸고 미처 떨어지지 못한 낙수는 고드름으로 처마에 매달렸다. 멀리서 가야산 상왕봉은 희끗희끗한 머리를 들어 정자를 굽어보는 듯하다. 원당암의 어머니 아버지 영가는 유음대로 부처님 품 안에 잘 드셨으리라 이제는 믿고 싶다. (202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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