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한마디 덕분에

2025. 2. 28. 18:39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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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둘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 벽에 커다란 입춘방을 써 붙여 놓았다. 무심코 '만립건립, 객춘양춘, 운대다대, 집길경길'이라고 가로 읽기를 하니 친구가 웃었다. 웃으면 음식 맛이 더 난다. 사장님이 썼는지 깔끔한 큰 글씨가 보기 좋았다.
지난달 입춘(2.3.)을 앞두고 단체로 입춘 부적을 받았다. 노랗게 물을 들인 직사각형 종이에 빨간색 문양과 검은색 글씨가 길게 세로로 인쇄됐다. 책상에 얹어둔 채 입춘이 와도 붙이지 않았다. 버리려니 속신이긴 해도 찜찜했다. 받지 않았다면 좋았으련만 근심처럼 눈에 띈다.

반주하면서 친구와 근황을 나누었다. 연초에 시니어 클럽에 일자리를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복불복 선발이라지만, 섭섭했다. 연초이어서, 올 한 해 운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소일거리를 찾아 쏘다니기도 쉽지 않고, 돈부자로 살면 모를까마는, 시간만 부자니 딱하다며 잡담했다. 친구도 여러 사연을 전해 주었다. 내가 갖추지 않은 부분의 정서가 풍부했다. 식사하는 중간에 친구가 슬그머니 일어나 계산하고 왔다. 식당을 나오면서 "다음에는 내가 살게." 인사하니 친구 왈 "다음에도 내가 살게."라면서 "다음은 올 한 해 몽땅"이라고 했다. 잡담 삼아 했던 내 말에 신경이 쓰였나 보다. 화제 삼아 한 말을 괜히 했나 싶었다. 하지만 연초에 운 없었던 일과 입춘 부적을 붙이지 않았음에도, 친구의 한마디는 그 운수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게 느껴졌다. '말 한마디에 천금이 오르내린다'는 속담이 이럴 때도 필요하다. 찝찝한 마음을 털어버려야겠다. (2025.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