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2025. 2. 13. 11:12여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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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사에서 바라본 석조여래좌상


* 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 보물
* 현지 안내판(요약)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은 보리사 터로 추정되는 곳에 있다. 광배와 더불어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까지 갖추고 있어 경주 남산 석불 가운데 가장 온전하다. 머리가 작은 소라 모양으로 덮여 있고,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인 육계가 높게 솟아 있다. 얼굴은 다른 돌로 조각하여 끼운 것으로 보인다. 양어깨를 덮은 옷은 주름이 촘촘한 편이다. 손의 모양은 왼손은 손바닥을 배 부분에 대고 있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불상과 별도로 만들어 세운 광배는 꽃무늬, 불꽃무늬, 작은 화불(化佛, 변화해 나타나는 부처)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광배 뒷면에, 왼손에 약그릇을 든 약사불울 선으로 새긴 점이 독특한데 동방 약사, 서방 아미타라 하여 석조여래좌상을 아미타불로 보기도 한다. 옷 주름이 복잡하고, 가슴은 평평한 편이며 무릎은 다소 작다. 조각 기법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답사 노트: 보리사로 가는 길은 상당한 오르막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걸음을 내딛자, 석불이 눈에 들어왔다. 경내 한편에 위치한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때 큰 사찰이었던 보리사 터에서 발견돼 '보리사지 석불좌상'이라고도 불렀다. 불상을 만나는 순간 천년 전에 조성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자태가 선명했다. 팔각 연화대좌에 앉은 부처가 꽃미남이었다. 불상과 광배의 장식 무늬가 또렷이 새겨져 전체적으로 화려해 보였다. 불상과 광배는 보기에도 다른 돌로 만들어 붙인 것 같았고, -안내판을 보니- 불두도 불신과 다른 돌이다. 그런 데도 8세기 역작으로 꼽혀 높은 평가를 받는 불상이었다. 복원 당시, 두 조각 나 있는 광배를 붙인 것이 표시가 났다. 신라인들의 예술성과 신앙심, 창의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상과 인접한 산기슭에 웅장한 바위가 많이 보였다. 현대에 와서 자연석을 이용한 예술 조각이 없는 이유는 법적 규제 때문인지, 돈벌이가 되지 않아서인지, 재능이 부족해서인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다. 현재의 보리사는 근대에 와서 비구니가 복원한 사찰로 웅숭깊은 숨을 내쉬고 있다. (2025.2.4.)

불상 주변의 거대한 바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