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3. 00:20ㆍ일상다반사
친구들과 늦도록 술자리를 가졌다. 자리를 파하고 나자 한 친구가 2차 하자고 졸랐다. 그를 위해 맥줏집 한 곳을 더 들렀다. 술맛은 나지 않았다. 표시를 내지 않았으나 그렇게 좋아하는 술이 시큰둥해지다니 술 복도 다 됐나 싶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세월은 시나브로 모든 것을 지워 나간다. 오래전 사실이 흐려져 잊힌 일이 많고, 어릴 적 그리운 동무들 이름과 얼굴조차 흐릿하게 퇴색했다. 빛바랜 추억 몇 가지만 거미줄처럼 가느다랗게 하늘하늘 흔들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둑한 밤길의 스산함이 늘그막 신세를 대변하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쓸쓸했다. 가을 타는 것일까. 머릿속에서 유년 시절의 좁고 긴 골목길이 튀어나와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더니 후회만 남은 학창 시절을 떠올리고 해변 참호에 엎드려 먼바다를 응시하던 초병이,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페인트칠하던 청년이, 불고가사하며 달렸던 사회생활이, 딸 아들 시집과 장가 보내던 날이, 늙으신 아버지 어머니가 눈앞에 어른거리며 지나온 인생길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내세울 것 없는 소시민의 길이었지만, 그런대로 내 몫만큼 산 것이다. 아파트 입구에서 신발을 훔치며 나 혼자의 희로애락을 떨쳐냈다. 현관문을 들어서니 TV를 켜놓은 채 졸음에 겨운 집사람이 "오늘은 늦었네요"라며 맞아준다. (2024.11.20.)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 몫만큼 살았습니다
바람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은 채로
이별 없고 눈물 없는 그런 세상없겠지마는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뿌린 만큼 살으렵니다
가진 만큼 아는 만큼 배운 대로 들은 대로
가난 없고 그늘 없는 그런 세상없겠지마는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 대중가요, 사는 동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