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 09:16ㆍ일상다반사

달구벌대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직 직장인 퇴근 시간이 도래하지 않아 도로가 비교적 혼잡하지 않았다. 꼬리를 물고 쌩쌩 달리는 수많은 차량의 질서정연한 모습이 신기했다. 동남아에서 많이 보았던 고물차 같은 것은 한 대도 없고 모조리 새 차처럼 깨끗하다. 신호 대기 중인 자동차는 같은 차종을 찾아보기 드물 정도로 다양하다. 요즘은 국산 차 종류가 많아 이름을 다 외울 수 없다. 포니1, 2가 줄지어 서던 시절과 견주어 우리 국민이 정말 잘 산다는 자부심이 은근히 느껴졌다.
네거리마다 커다란 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직진, 좌회전, 우회전, 유턴 등 진행할 차선 안내판이다. 대로는 도로폭이 넓어 똑바로 직진하는 차선이 여러 개, 가장자리 하나씩은 좌, 우회전이었다. 좌회전 차선과 병합해 유턴 표시가 있거나 없기도 했고, 좌회전을 금지한 도로는 유턴만 표시됐다. 표지판이 단순한 데 도로 진행은 다양한 규칙이 있다. 그런데도 차들은 기러기 떼처럼 줄지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아가고 비껴가고 돌아갔다. 운전자가 규칙에 익숙해져 있다 하더라도 신호를 따르는 모습이 보기에 아름다웠다.
문득 도로 표지판이 인생 표지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성장함에 따라 앞을 향해 자꾸만 직진으로 나아간다. 가다가 장애물을 만나거나 다른 목표가 정해지면 진로를 좌, 우회전하듯 변경하는 이도 있고, 더 큰 성과를 내려고 아예 유턴해 새출발하는 경우도 많다. 가끔 지난날을 되짚어보면, 진로를 바꾸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회한에 잠긴다. 지나온 인생, 유턴은 없다. 푸시킨 말처럼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 버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삶이란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새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이용이 줄어든 유휴 구 도로가 많아졌다. '그리운 도로' 표지판이라도 만들어 세운다면 위로가 되려나…. (202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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