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4. 08:43ㆍ일상다반사
이른 아침, 지인 텃밭에서 고추와 가지를 한 양동이씩 땄다. 며칠 따지 않았다는데 그새 많이도 달렸다. 먹을 만큼만 따려는데 천사표 지인이 한 양동이씩 안겼다. 가지는 어찌나 컸던지 큰 검정 비니루 한 포대나 됐다. 고추와 함께 차에 실어놓고 구천지에 갔다.
구천지는 텃밭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저수지다. 못 둑에 서니 연꽃이 수면을 뒤덮어 연밭을 이루었다. 초록 밭에 붉은 연꽃이 보석처럼 점점이 박혔다. 어떤 내음을 맡을 수 없었으나 연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는 듯 느껴졌다. 많지도 적지도 않아 보이는 연꽃이 눈맛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평온하게 만들어 주었다. 연꽃을 가까이 보려고 물가에 내려가려니 너무 우거진 잡초가 접근을 막았다. 둑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못 보던 무궁화가 새로 심겨 있었다. 둑에는 키 작은 나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산책하면서 연꽃을 사랑한 주돈이의 애련설이 부분부분 떠올랐다.
지인이 저수지 이름을 구천지(狗泉池)에서 매호지(梅湖池)로 바꾼다는 설문 조사가 있었다고 했다. 사람이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간다는 구천(九泉)을 연상시켜 싫다는 거다. 같은 이유로 1976년쯤 황천동(黃泉洞)을 황금동(黃金洞)으로 바꾼 사례가 있긴 하지만, 개인 의견으로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행정이 휘둘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九泉[저승]을 연상하며, 현재 이름 狗泉[개를 꿈에서 본]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텐데 싶었다. 옛 지명의 한자 풀이를 하면 온천이나 수몰지, 피난처 등 예지가 담긴 명칭도 많다. 요즘은 성형 미인이 많아서인지 걸핏하면 무엇이든 뜯어고치는 일이 잦아졌다. 성형 중독에 걸리지 말자. 무심코 선조의 지혜를 얕봐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헛똑똑이일 수도 있다.
집에 돌아와 가지와 고추를 먹을 만큼 빼고, 나머지를 경비실에 가져다드렸다. 지인의 수확물로 아저씨가 기뻐하던 표정이 온종일 생각나 기분이 좋았다. (202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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