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7. 07:59ㆍ입맛
한 달 전, 지인이 묵 만들어 먹으라면서 도토리 가루 한 봉지를 주었다. 차일피일하다가 그동안 냉동고에 넣어두었다가 마침내 오늘 묵을 쑤었다. 지인에게 얼핏 들은 말을 기억해 가며 만들었는데… 찜통 속의 도토리 앙금을 넣고 식용유 조금, 소금 조금을 넣었다. 가스 불을 중불보다 약간 세게 맞추었다. 앙금에 생수를 조금씩 부어가며 저어야 했는데 실수로 준비해 둔 삼 리터를 한꺼번에 다 부었다. 물이 많은 듯싶었으나 어쩌지 못하고, 앙금이 찜통 바닥에 누를 붙거나 타지 않도록 쉬지 않고 저었다. 멀겋던 물에 찌꺼기 같은 것이 하나둘 생기나 싶더니 저을수록 곧 뻑뻑해지고 되게 되어 휘젓는 데 살짝 힘이 들었다. 45분쯤 젓고 나니 팥죽 끓듯이 뽀글뽀글 끓어 뚜껑을 닫고 3분 뜸을 들인 후 작은 용기로 옮겨 부었다. 막상 부어보니 많지 않았다. 네 모 정도 될 것 같다. 뜨겁던 묵이 식으니 연한 갈색이 났다. 손으로 누르니 탄력이 하늘하늘했다. 감촉이 산뜻해 장난꾸러기처럼 자꾸 누르고 싶었다. 확 당기는 맛은 저마다 입맛에 달렸겠지만, 양념장을 곁들이니 별미다.
만든 묵을 점수로 치자면 10점 만점에 8점을 주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재료가 청정하다. 예천 심심산골에 계신 지인의 어머니가 노구를 이끄시고 토종 도토리를 주워 정성껏 씻고 갈아 만든 앙금이다. 둘째는 내가 직접 쑤었으니, 그 고됨을 알기에 점수를 넉넉히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셋째는 스마트한 지식도 없이 처음 만든 셈 치고는 준수하다. 손으로 꾹꾹 눌러도 탱글탱글 탄성이 살아있으니 이만하면 잘 된 거다.
저녁으로 묵밥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 나니 채점을 2점 더 높이고 싶다. 혹시나 이것 땜에 다람쥐가 굶는 불상사는 없겠지…. (202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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